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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만든 서울 축구팀 - 이준석의 킥 더 무비<서울 유나이티드, 이제 시작이다>

서울 시민 구단의 이야기

시민구단은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서 만든 축구팀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현재 K리그에서 시민구단을 표방하는 구단들로는 인천, 대전, 강원, 경남, 대구, 광주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시민구단들은 재정 문제 및 자립도 등으로 호된 된서리를 맞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시민구단의 위기입니다.
‘서울 유나이티드 풋볼클럽(이하 서유)’도 시민 구단입니다. 물론 아직 K리그에 참여하지 않고 3부 리그 격인 챌린저스리그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서유는 서울을 고향으로 팬들에 의해 창단된 시민구단으로서 장차 K리그에 진입할 꿈을 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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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이 만든 축구팀, 전국을 제패하다


이 영화를 보는 분들은 자연스레 <비상>을 떠올릴 겁니다. 하위권을 맴돌던 인천 유나이티드의 준우승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비상>. 하지만 이 영화는 비상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있습니다. 우선 해설이 없습니다. 철저하게 관찰자 시점에서 서유 선수들과 서포터들의 일상을 담기만 했고, 경기 장면은 서유의 자체 중계 화면을 빌려왔을 뿐입니다.
처음에는 해설 없이 경기를 중계하는 어떤 여성 축구팬의 흥분된 목소리만 나와서 당황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다 보면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금방 눈치 챌 수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서유는 K리그 팀이 아닙니다. 하지만 팬들의 열정은 아마추어가 아닙니다. 오히려 여느 K리그 서포터와 마찬가지로 선수들과 같은 유니폼을 맞춰 입고, 커다란 깃발을 흔들고, 서포팅 곡을 박수 치며 부릅니다. 그리고 멀리 원정도 따라가지요. K리그 올스타전 때는 팬들이 직접 전단지를 가지고 와 자기 팀을 홍보합니다. 게다가 경기장의 광고판도 팬들이 직접 설치를 합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대단한 열정이지요. 저 역시 이 모습을 보면서 많은 반성을 했습니다. 미국의 대통령 케네디가 말한 것을 조금 변경해서 곱씹어 봅니다.
“팀이 팬에게 무엇을 해 줄지 생각하기 전에, 팬이 팀을 위해 무엇을 할 지 생각하라.”
서유가 아직 규모가 작은 아마추어 리그에서 활동하다 보니 웃지 못 할 일들도 많이 일어납니다. 서유 서포터들의 열정이 지나친 나머지 상대팀 선수들과 싸움이 붙는 장면이 그것입니다. 다른 K리그 경기와 달리 경기장과 그라운드 사이에 자유롭게 왕래가 가능하다 보니 일어난 일이지요. 이 일로 서유 서포터들은 대한민국 축구 사상 최초의 ‘무관중 징계’를 받게 됩니다.

자기 팀을 위해 쇠창살에 매달린 그들

감동적인 장면은 바로 이 ‘무관중 징계’로부터 일어나지요. 경기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서유 서포터들. 그들은 멀리 창원까지 원정을 왔지만 정작 경기장 안에는 들어가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경기장과 외부를 가르는 쇠창살에 매달립니다. 그리고 소리 높여 응원가를 부르지요. 골을 넣은 서유 선수들은 쇠창살 앞에까지 와서 인사를 합니다.
서유 서포터들의 경기장 출입금지는 홈경기에까지 이어집니다. 하지만 서유 팬들은 구단 재정에 보탬을 주기 위해 경기장에 입장하지 못했음에도 입장료를 걷어 구단에 전달합니다. 철창에 매달린 서포터들, 그리고 필요 없는 입장료를 걷어 구단에 건네는 그들.
축구장의 주인이 누구인지, 그리고 팬들의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지 새삼 깨닫게 해주는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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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에서 서유를 볼 그 날을 기다린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서유는 기업이나 지자체가 아닌, 팬들에 의해 창단된 구단입니다. 영화에 나오는 어느 이름 모를 서유의 팬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꼭 이 팀이 K리그에 없어도 상관없어요. 그저 사랑하는 내 팀이 있다는 사실에 행복합니다.”
참으로 순수한 팬들의 마음이 드러나는 말이지만, 그래도 저는 이런 멋진 팬들이 있는 팀을 꼭 K리그에서 보고 싶습니다. 참고로 제가 이 영화 DVD를 택배로 받았을 때 DVD는 서유에서 제작한 서류 봉투에 담겨 있었습니다. 그 서류봉투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습니다.
‘Fans come first(팬이 최우선이다).’

#글쓴이 이준석은 축구 칼럼리스트이며 현재 비뇨기과 전문의이다. 이 글은 저자가 2013년 3월 펴낸 《킥 더 무비-축구가 영화를 만났을 때》를 재구성한 내용이다. 축구를 소재로 한 영화에 대한 감상평으로 축구팬들로부터 스포츠의 새로운 면을 일깨우는 수작으로 큰 호응을 받았다(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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