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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타타라타] 김민수라는 골프선수를 위한 입영기사
#중국 송나라 때 학자인 정이는 인생의 ‘삼불행(三不幸)’으로 ▲소년등과(少年登科), ▲석부형제지세(席父兄弟之勢), ▲유고재능문장(有高才能文章)을 꼽았다. 일찍이 높은 자리에 오르고, 대단한 부모 형제를 만나 덕을 보고, 높은 재주와 뛰어난 문장력을 지닌 것이 불행이란다. 조선시대 우리 선조들까지 이를 강조했다. 참 역설적이다. 솔직히 요즘은 이 3가지가 되레 목표가 아닌가? 청소년 선호직업 1위가 공무원이고, 금숟가락 물고 나온 사람을 부러워하고, 재주는 부정한 방법으로도 얻으려고 하니 말이다. 베스트셀러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이 ‘소년등과’를 소개하며 청춘루저들을 위로했지만, 여전히 우리의 현실은 '3가지 불행'을 행운이나 목표로 인식하는 듯싶다.

#곱씹을수록 그 의미가 또렷해지는 삼불행은 첫 번째가 스포츠와 관련이 깊다. 정반대의 의미로 말이다. 운동이라는 것이 어차피 물리적 나이에 따라 전성기가 있으니 일찍이 성적을 내면 유리하다. ‘신동’, ‘무슨무슨 십대’ 등 일찍이 두각을 나타내는 어린 선수들에 대한 찬사적 표현이 즐비하다(타이거 우즈가 골프를 몇 살에 시작했다고?). 조기교육은 이제는 스포츠계에서 필수다. 어느 종목이든 최대한 일찍 시작하는 것이 좋단다. “우리 아이는 탁구 안 시켜요. 초등학교생인데 이미 늦었어요. 예전에는 4~6학년에 시작하지만 요즘은 아예 유치원 때부터 시키죠. 아이들일수록 선점효과가 크잖아요. 그래서 클럽이든 팀이든 먼저 시작해 잘 치는 아이들 위주로 가르치죠. 그러니 역전이 힘들죠. 아예 공부가 더 나아요.” 한 유명한 탁구선수의 말이다. 이러니 대학입시 한판승부로 인생의 아주 많은 것을 결정짓는 우리네 교육시스템처럼 스포츠에서도 스무살 이후의 ‘인생역전’은 드물어지고 있다(스포츠에는 로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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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살의 김민수라는 골프선수가 있다. 사실상 국내 골프선수 중 비거리가 가장 뛰어나다고 하는데 뭐 유명하지는 않다. 아는 사람만 아는 수준이다. 그것도 주류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스크린골프 투어(GTOUR)에서 두각을 나타내 그나마 이름을 알렸다. 이 선수는 새삼 ‘인생삼불행’을 떠올리게 만든다. 현대의 골프는 과거의 인생삼불행을 타박하는 대표적인 스포츠라 할 수 있다. 일찍 시작해 일찍 성공해야 하고, 경제적 후원 등 집안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고, 재주도 뛰어나야 한다. 그런데 김 프로는 3가지가 모두 없다. 삼불행을 모두 피했으니 대단한 행운아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를 따라 연습장을 다니다 골프에 입문했다(늦었다). 그런데 중1때 아버지 사업이 부도가 나며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제대로 골프를 할 수 없는 상황. 몇 년은 억지로 버텼지만 도저히 방법이 없어 고등학교 시절부터 가평 썬힐골프장에서 캐디와 일용직원으로 일을 했다. 어린 나이에 돈 많은 손님들을 위해 온갖 궂은 일을 한 것이다. 2012년까지 무려 7년이다. 또래 잘 나가는 친구들은 국가대표로 국내외 주니어대회 및 프로대회에서 성적을 냈지만, 그는 밤에 홀로 연습하는 상황에서 용인대총장배 3위(고1), 경기도지사배 우승(고2), 그밖에 주니어 대회 톱10 수 차례가 기억할 만한 성적이었다. 악조건을 고려하면 사실 이 정도 성적도 훌륭하다.

#177cm에 76kg. 신체조건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선천적인 척추기형으로 정기적인 척추 재활치료를 받아야 했다. 제대로 된 유명 프로에게 배워본 적이 없고, 정식 프로가 아닌 ‘아는 분’으로부터 지도를 받는다(물론 코치님으로 부르고 개인적으로 존경한다). 성적도 초라했다. 성인이 돼서도 세미프로 테스트, 프로테스트, 시드전 등에서 모두 낙방한 경험이 있다. 골프를 그만 두려고 수십 차례 고민했지만 먹고 살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없어 계속했다. 2012년 1부 투어에 데뷔했지만 먹고 살기 위해 캐디생활도 지속했다(2012년 상금 1,318만원, 104위).

#기회가 찾아온 건 2013년 만 23살 때다. 그해 초 우연히 GTOUR에 출전했는데 시작부터 우승을 하는 등 큰 변화가 생겼다. “(GTOUR는)무엇보다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됐지요. 제가 상금 1억 원을 돌파하는 첫 선수가 됐으니까요.” 김민수는 스크린투어에서 번 상금으로 KPGA 코리언투어 경비를 조달했다. 그런데 신기하게 성적이 동반상승했다. 2013년 상금 63위, 그리고 2014년은 상금 54위로 점프했다. GTOUR 최고의 선수(2013~2014시즌 대상 상금왕 다승왕)가 됐고, 코리언투어에서도 빼어난 장타력을 뽐내며 4월 동부화재 프로미 오픈 12위, 메이저 대회인 7월 KPGA선수권 11위 등 인상적인 성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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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삼불행을 피한 탓일까, 김민수는 평소 기자들이 접하는 스타선수와는 거리가 멀었다. 어린 시절부터 고생을 많이 한 까닭인지 친절, 겸손이 몸에 배어 있다. 그리고 특히 어렵게 이어온 골프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유명한 선수들의 화려한 면만 알려져서 그렇지 힘들게 운동하는 골프선수들이 참 많아요. 저는 운이 좋아 조금 먼저 나아진 것일 뿐이에요. 전 지금도 어프로치 입스가 심각해요. 많이 부족하죠. 하지만 길게 보고 더 노력할 겁니다.”

지난 14일 2014-2015시즌 삼성증권 mPOP GTOUR 윈터 시즌 개막전에서 우승한 후 김민수는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 여자친구 사진이 있길래 물어 보니 “직업이 같은 프로골퍼에요. 아직 장인 장모 되실 분들에게 말씀을 드리지 않았으니 실명만 쓰지 말아 주세요”라고 쿨하게 주문했다. 보면 볼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스타일이다.

#막 인생이 피기 시작하는 이 때 김민수 프로는 군대에 간다. 그새 나이가 찬 것이다. 갖은 방법을 써 군입대를 늦출 생각이 없었기에 일찌감치 결정했다. 내일(12월 22일) 논산훈련소로 간다. 국군체육부대(상무) 선발에서 탈락했기에 시쳇말로 ‘막군’으로 입대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아쉬움도 없다. “세계랭킹을 기준으로 했고, GTOUR성적은 고려되지 않으니 제가 탈락한 것은 당연합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삼불행을 피하면서 쌓은 내공이 워낙 강한 까닭에 군생활도 걱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2016년 9월에 제대하는데요. GTOUR 뛰면서 경기감각 익힌 후 코리언투어에 나설 겁니다. 제가 거리가 좋기 때문에 미국에서도 통할 것이라는 평가도 듣고 있어요. 혹시 아나요. 미PGA까지 갈 수 있을지.”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는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못 배우고, 병약하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것이 나의 가장 큰 행복”이라고 말했다. [헤럴드 스포츠=유병철 기자]

#P.S. 김민수의 입영열차에 부치는 <명언> 하나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고,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고 내 일이었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말라.
그림자 말고는 친구도 없고 병사로만 10만, 백성은 어린애, 노인까지 합쳐 200만도 되지 않았다.

배운 게 없다고 힘이 없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은 깡그리 쓸어버렸다. 나를 극복하는 그 순간 나는 징기스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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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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