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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진한의 사람人레슨](3)엄마를 향한 명품스윙 - 배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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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10년 전 이맘 때인 것 같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만 18세의 배상문을 처음 만난 게 말이다. 보통 주니어시절부터 이름을 떨친 유명 선수들과는 달리 배상문은 아마추어에서 2년간 활동한 뒤 곧바로 프로로 전향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인 2004년 KPGA 2부(KTF)투어에서 첫 승을 거두고 2005년 1부 투어 데뷔를 앞두고 있었다. 집안이 어려웠기에 국가대표를 포기하는 대신 또래보다 빠른 지름길로 프로무대에 뛰어든 것이다.

“임 프로님, 우리 상문이 좀 훈련시켜 주세요.”

10대 배상문의 어머님인 시옥희 씨는 필자를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박세리로 인해 ‘골프 대디’는 유명했지만 그와 정반대인 남자프로의 캐디 엄마는 드물었던 때다. 어머님의 열성이 대단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앳된(내게는 지금도 그렇게 보인다) 배상문이 쭈빗 서 있었다.

지금도 당시 기억이 생생하다. 배상문의 스윙을 처음 본 순간 ‘진짜 이놈 좋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임팩트가 강하면서도 부드러웠다. 강한 부드러움. 이 말장난 같은 역설은 사실 골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골프에서 스윙이 강한 사람은 성공하기 힘들다. 부드러움이 진짜 강한 것이다. 배상문의 스윙은 부드러움 속에서 파워가 터져나왔다. 스윙 리듬도 좋았다. ‘물건이 되겠다’고 확신했다.

당연히 훈련을 맡았다. 이 정도 선수에게는 레슨비 이런 거는 중요치 않다. 왜 일찍이 맹자님도 천하 영재를 얻어 가르치는 것이 군자의 마지막 즐거움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배)상문이에게 골프를 가르치면서 세 가지를 고민했다. 첫 번째는 모르시는 분들은 의아하게 생각하겠지만 어머님의 자식사랑을 적절하게 식혀주는 일이었다. 골프 기술보다 상문이를 위해서는 이게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물론 훈련프로그램이었다. 아무리 자질이 뛰어나도 체계적인 훈련이 없으면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처음부터 목표를 미국 진출로 삼은 까닭에 이에 필수적인 체력, 정신력, 언어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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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문의 미국진출은 절처하게 준비된 프로젝트다.

준비된 꿈

돌이켜 보니 나름 이 세 가지의 포커스가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진 느낌이 든다. 역순으로 이를 되짚어 보면, 먼저 배상문의 미PGA 성공은 아주 잘 기획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상문이에게 처음부터 웨이트 트레이닝 전문가를 붙였다. 미국에서 최경주가 막 성적을 내고 있을 때인데 한국에서 다부지기로 유명했던 이 ‘한국산 탱크’도 미국투어에 적응하느라 힘들었다고 술회했다. 당연히 가장 중요한 게 체력이었다.

“상문아, 최경주 프로가 해냈으니 너도 할 수 있다. 체력훈련을 게을리 하지 마라.”

운동이든 공부든 그렇다. 가르치는 사람이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백번 말하는 것보다 선수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선수가 100% 공감하면 훈련은 100% 효과가 있고, 50%만 절감하면 50%만 작동한다.

시작부터 미국 진출을 강조했으니 기회가 닿을 때마다 미국으로 상문이를 데려갔다. 겨울 미국 전지훈련만 3번을 데려갔다. 미국에서 직접 무엇이 필요한지 느끼게 만들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드넓은 땅을 돌아 다녀야 하니 체력이 좋아야 하고, 비거리를 늘려야 했다. 미국 잔디 위에서 직접 볼을 치는 느낌도 중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어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야 했다. 미국이 멀지 않은 느낌, 미국과 친해지기….

배상문은 이렇게 스스로 미국 진출의 꿈을 키워갔다. 처음 미국 골프장에서 선 배상문에게 “상문아! 여기가 네가 와야할 자리다”라고 말하자, 아무 대답없이 눈을 반짝이던 그 모습이 생각난다.

잘 알려진 것처럼 배상문은 내 문하로 들어온 후 국내 메이저 대회인 SK텔레콤오픈에서 우승했다. 그리고 2008, 2009년 국내 상금왕 2연패를 달성했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2011년에는 일본 상금왕에 올랐다. 2012년 마침내 꿈에 그리던 미국에 진출했고 이번 시즌 1승을 포함, 통산 2승을 올리고 있다.

선수는 꿈, 그러니까 확실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 상문이는 미국 진출이라는 목표를 잘 받아줬다. 그리고 계획대로 한국-일본 상금왕을 거쳐 이제는 미국 상금왕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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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면 좀 예민해 보이나? 배상문은 사실 자신의 스윙에 대해 아주 예민하다.

그 좋은 스윙을 그렇게 고민하나!
두 번째 배상문의 골프훈련과 관련해서는 특정한 기술보다는 마인드 컨트롤, 즉 마음자세에 대해 설명하고 싶다. 이 점은 아마추어 분들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번 칼럼의 레슨 포인트이기도 하다.

예전에도, 지금도 나는 자신 있게 얘기한다. ‘미국에 진출한 한국선수 중 배상문이 가장 볼을 잘 때린다’고 말이다. 정말 기술이 좋다. 스윙은 명품이다.

배상문의 문제는 성격이 너무 예민하다는 것이다. 겉으로 보면 ‘경상도 싸나이’답게 목소리도 크고 말도 시원시원하게 한다. 여기에 인물까지 허옇게 멀쑥하니 전혀 예민하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상문이는 아주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다. 특히 골프스윙에 있어 그렇다. 앞서 이 칼럼의 프롤로그에서 소개했듯이 타이거 우즈도 전성기에 14개의 티샷 중 스스로 만족하는 샷은 하나 정도라고 했다. 골프라는 운동이 같은 스윙으로, 같은 파워로 쳐도 공은 다르게 날아갈 수 있다.

당연히 공이 몇 번 빗나갔다고 내 스윙자세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참 피곤해진다. 배상문이 그렇다. 골프가 안 되면 생각이 많아진다. 그 좋은 - 필자가 보기에 한국 최고인 - 스윙을 가졌는데 볼이 좀 안 맞는다 싶으면 ‘내 스윙자세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게 그의 가장 큰 단점이다.

안 맞을 때는 ‘안 되는구나’ 하고 흘려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너무 완벽주의자가 되려고 하면 선수로는 힘이 들 수밖에 없다. 골프도 인생도 오르막 내리막이 있는 것이다.

아마추어들도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스윙 스윙 할 필요 없다. 좋은 스윙도 여러 이유로 인해 볼이 안 맞아 나갈 때가 있다. 즉 스윙을 자주, 함부로 바꾸려고 애를 쓰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한다.

참고로 나중에 소개하겠지만 내가 배상문과 함께 가르쳤던 양용은은 정반대다. 그렇게 성격이 털털할 수 없다. 둘을 좀 섞었다면 좋을 텐데 말이다.

상문이가 미국에 간 첫 해(2012년) 네 대회인가 치렀을 때였다. 성적이 좋지 않았다. 마침 나도 미국에 있던 터라 전화가 왔다. 액센츄어 매치플레이 대회에 못 나가 시간이 있으니 함께 라운드를 하자고 했다. 그 때 일이다.

당시 한국계 미국인이 상문이의 매니저였는데 라운드 도중 전화가 왔다. 아마도 다음날 스케줄을 잡는 모양인데 상문이는 영어가 영 서툴렀다. 뭐 ‘투모로우 나인 어클락 오케이’ 이 정도였다. 나름 한국에서 영어공부를 한다고 했는데 많이 부족했던 것이다.

“프로님 저는 언제쯤 우승할까요?”

라운드 후 밥을 먹는데 배상문이 이렇게 불쑥 물어왔다. 분위기가 좋아 그냥 눙치고 말까 하다가 제대로 한 마디 하는 쪽을 택했다.

“상문아, 너를 데리고 있었으니 내가 네 단점을 잘 안다. 지금 보니 예전 한국에서 우승하지 못했을 때처럼 좀 예민해 보인다. 너무 스윙스윙 하지 마라. 프로는 스윙이 아니라 점수다. 그 예민함에서만 벗어나면 내년쯤에는 반드시 우승한다. 그리고 영어공부도 더 해라. 영어에 익숙해지는 만큼 우승이 가까이 올 것이다.”

내 말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음해 상문이는 정말 우승했다. 남들은 관심 없었지만 배상문이 영어로 우승자 인터뷰를 하는 것을 보고 나는 너무도 뿌듯했다.

누구나 장단점이 있다.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면 어떤 선수도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 있다. 배상문은 예민함이라는 단점을 잘 극복하고 있지 않나 싶다.

혹시나 배상문이 이 글을 볼 수도 있니 이 참에 한 번 더 잔소리를 해야겠다.

“상문아, 며칠 전(11월 9일) 신한동해오픈 2연패를 축하한다. 내가 무슨 말 하려는지 잘 알지? 스윙에 집착하는 것만 버리면 너는 승승장구할 것이다. 미국 상금왕도 한 번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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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둘도 없는 골프 모자(母子)다.

열혈 골프맘의 수기는 해피엔딩

세 번째 복기다. 어쩌면 이건 배상문 골프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많은 골프선수와 부모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금은 골프계에서 ‘전설의 사건’으로 불려질 만한 사건들이 상문이와 어머님 사이에서 종종 발생했다. 뭐 남들이 이것을 뒷담화 소재로 삼아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나는 이를 지극히 긍적적으로 해석한다. 이건 생각보다 골프에서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 번은 대회장에서 방송관계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사람들이 모인 클럽하우스인데 상문이 어머님이 화가 잔뜩 나서 아들에게 험한 말을 하고, 손찌검까지 할 분위기라고 했다. 프로님이 멀리 있지만 어떻게든 수습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알고 보니 어머니의 개입에 화가 난 상문이가 경기 중 일부러 산을 보고 티샷을 때려 OB를 냈다고 한다. 이걸 열혈 어머니가 어떻게 놔두겠는가? 나는 전화로 상문이에게 엄마가 따라오지 못하는 남자 목욕탕으로 일단 피하라고 했다. 잘 못했다는 사과도 어머님이 좀 진정하신 후에 해야 효과가 있기 때문이었다.

여자 혼자서 아들을 프로골프선수로 길러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도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말이다. 이걸 시옥희 여사는 해냈다. 누가 뭐래도 대단한 일이다. 이 과정에서 열정이 지나쳐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것도 우리가 이해했으면 한다.

실제로 나도 상문이를 가르치면서 어머님의 엄청난 열정을 완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예컨대 배상문이 프로에서 첫 승을 거둔 이후 내 주문이 “어머니, 앞으로 6개월은 따라 다니지 마세요”였다. 어린 나이에 큰 대회에서 우승까지 했으니 이제 좀 여유를 가지시라는 의미였다. 물론 그 약속은 3개월 만에 ‘다시 따라 다녀야겠다“는 전화와 함께 깨졌다.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것은 배상문은 어머니가 어떻게 하든 다 받아준다는 점이다. 어머니 얘기가 나오면 특유의 큰 웃음과 함께 “우리 어머니 대단하잖아요!”라고 턱 받아낸다. 자기 엄마를 진정 사랑하는 멋진 아들이다.

자식에게 열정 없는 부모가 어디 있겠나? 부모의 자식사랑은 없어서도 안 되지만 과해도 좋지 않다. 우리네 문화에서 자식사랑은 지나쳐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박세리 프로를 보자. 골프를 한 사람은 다 안다. 아버님이 스파르타식 강훈련을 시켰다. 한때는 그게 좋으냐 나쁘냐를 놓고 논란도 있었다. 이런 논쟁을 떠나서 중요한 것은 선수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이다. 박세리 프로는 그 혹독한 훈련, 그 엄청난 야단을 다 자신의 양분으로 소화해 냈다. ‘우리 아빠가 나를 훌륭한 선수로 만들기 위해 이렇게 한다’고 말이다.

배상문 역시 우리가 보기에는 어머니가 지나치다고 할 수 있지만 선수 자신은 궁극적으로 “내 골프의 8할은 어머니"라면서 다 받아냈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했기에 꿈을 이루는 것이다.

주니어 선수 부모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너무 지나친 열정은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열정은 조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기준은 선수에게 있다. 부모가 아무리 가혹해도 박세리, 배상문처럼 받아들이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열정을 조절해야 한다. 다른 방법을 택해야 성공할 수 있다. 자칫 골프도 망치고, 부모자식 사이도 안 좋아지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배상문의 경우 어머님의 열정이 워낙 강했기에 가르치는 내가 이걸 좀 적절하게 식혀주는 노릇을 해야 했다. 그리고 나름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머님에게도 감사하다.

작년인가, 배상문이 미PGA 첫 승을 거둔 직후 시옥희 여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용은 이렇다.

“선생님, 너무 고마웠습니다. 당시만 해도 상문이 운동시키며 레슨비도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신세만 졌지요. 이제 살 만해졌어요. 판교 쪽에 집도 마련했고, 잃어버렸던 대구집도 다시 샀어요. 많이 좋아졌습니다. 꼭 좀 식사를 한 번 대접하고 싶은데 시간 내주세요.”

생각지도 않은 이런 전화를 받다니. 좀 울컥했다.

“저, 어머님, 제가 고맙습니다. 이 전화 하나로 제가 100번 밥 얻어먹은 것으로 생각하겠습니다. 어머니, 상문이한테 대한 열정 지나치신 거 어머니도 알고, 다들 알죠? 그것만 조절해주시면 100번 밥을 산 겁니다.”

수화기 저쪽에서 유쾌한 “맞아, 맞아” 소리가 들렸다. 배상문과 억척 골프맘의 스토리는 해피엔딩이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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