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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오픈 특집]명승부를 통한 스타탄생의 산실<상> - 세계로 가는 길
1958년 이래로 올해 57회째를 맞는 코오롱 한국오픈 골프선수권대회(이하 한국오픈)는 내셔널 타이틀 답게 한국에서 두 가지 최고(最高 最古)의 의미를 가진다. 유구한 역사와 최고 권위에 걸맞게 길이 남을 명승부와 화제의 우승자들을 배출했다.

숱한 사연이 있지만 한국오픈의 최대 특징은 '명승부를 통한 스타탄생의 산실'이라는 점이다. 한국선수에게는 세계무대로 진출하는 교두보가, 외국선수에게는 도약의 계기가 돼 왔다. 23일 대회 개막에 맞춰 한국오픈 특집 ‘명승부를 통한 스타탄생의 산실’은 <상>편으로 역대 한국우승자를 살펴봤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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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기자회견 도중 웃으며 답변중인 노승열. 사진 제공=코오롱 한국오픈 조직위원회


“4년 전 한국오픈의 역전패가 성장에 바탕이 되는 좋은 경험이 됐다.”
21일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린 대회 공식기자회견에서 한국남자골프의 기대주 노승열(23 나이키)은 이렇게 말했다. 2010년 대회의 기억이 얼마나 강렬했으면 4년이나 지난 지금, 그것도 미PGA에서 첫 승을 거둔 올해 이렇게 말을 할까?

2010년 한국오픈 4라운드에서 19살의 노승열은 5타차 선두로 나섰다. 그런데 8오버파 79타로 무너지며 10타 차이가 났던 양용은(42)에게 대역전패를 당했다. 얼마나 공이 안 맞았는지 경기막판 자포자기하는 모습을 보였고, 경기 후에는 눈물을 쏟아냈다(최종 4위). 합계 4언더 280타로 이 대회 두 번째 정상에 오른 양용은이 자신의 기쁨보다는 후배걱정이 앞서며 “충격을 덜 받았으면 한다. 이번 계기로 더 성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을 정도다.

앞서 같은 해 5월 노승열은 메이뱅크 말레이시아 오픈에서 마지막 홀 그림 같은 버디로 최경주를 1타차로 제치고 우승했다. 그해 아시안투어 최연소 상금왕에 오르는 등 욱일승천하는 기세였는데 한국오픈에서 뼈아픈 경함을 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보약이 됐을까? 노승열은 2011년 미PGA Q스쿨을 통과해 2012년부터 미국에 진출했다. 그리고 숱한 좌절을 맛보면서도 꿋꿋히 세계 최고무대에 적응하며 2014년 5월 취리히클래식에서 첫 승을 거두는 등 미국에서도 촉망받는 영건으로 성장했다. 웬만한 좌절에는 눈도 깜짝하지 않을 정도로 한국오픈은 예방주사가 된 것이다.

한국오픈 역사는 자연스레 양용은으로 이어진다. 양용은은 앞서 2006년 이 대회에서 정상에 올랐고, 우승자 자격으로 같은 12월 출전한 유럽프로골프투어 HSBC챔피언스 토너먼트에 출전했다. 그리고 이 2007시즌 유럽투어 개막전에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를 비롯한 전 세계 강호들을 제치고 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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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기자회견 도중 진지한 표정으로 답변중인 양용은. 사진 제공=코오롱 한국오픈 조직위원회


한국 최고(내셔널타이틀 획득)-유럽개막전 우승을 순차적으로 달성됐으니 당연히 목표는 세계 최고봉 미PGA. 양용은은 2007년 말 Q스쿨을 통해 미PGA 시드권을 땄고, 2008년 미국으로 무대를 옮겼다. 그리고 2009년 혼다클래식 우승에 이어 메이저대회인 PGA챔피언십에서 타이거 우즈와 ‘맞짱’을 뜨는 명승부 끝에 메이저챔피언이 된 것이다. 그리고 2010년 한국오픈에서 후배 노승열에게 오묘한 골프의 이치를 한수 가르치며 두 번째 정상에 오른 것이다.

현재 양용은은 최악이다. 극심한 부진으로 미PGA 출전권을 잃었다. 2014년 대회를 부활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과연 그의 ‘4년 주기설’이 들어맞을까? 2006년과 2010년 내셔널타이틀 정상에 오른 양용은에게 한국오픈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최경주와 배상문으로 넘어가면 한국선수들에게 한국오픈 우승은 미PGA 우승의 필요조건 임을 알 수 있다(우승 문턱까지 간 노승열만 예외). 한국남자골프의 맏형 최경주는 1996, 1999년 한국오픈에서 우승하며 더 이상 한국에서는 이룰 게 없다고 판단, 일본무대로 시선을 돌렸다. 2000년부터 미PGA투어에 진출했고, 지금까지 통산 8승으로 아시아 최다승을 올리고 있다.

배상문은 2008, 2009년 내셔널타이틀을 거푸 따내며 보다 빨리 세계제패에 도전했다. 2010년 일본투어(JGTO)에 진출했고, 2011년 일본상금왕에 오른 후 Q스쿨을 통해 2012년부터 미PGA에 도전했다. 그리고 2013년 바이런 넬슨 챔피언십에서 첫 승을 수확했고, 이달초 2015시즌 개막전인 프라이스닷컴오픈에서 통산 2승째를 거뒀다.

해외진출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내셔널타이틀 획득으로 당대 한국 최고의 골퍼에 오른 선수도 많다. 김대섭은 아마추어 시절 두 차례 우승, 그리고 2012년 군 제대 후 4번째 출전만에 세 번째 한국오픈 우승을 달성하는 등 ‘한국오픈의 사나이’로 부족함이 없다. 또 4연패를 포함한 7회 우승의 원로 한장상, 5회 우승의 최상호, 멀티 우승에 성공한 김승학, 최윤수 등 한국오픈은 그 역사책에 이름을 남기지 않고서는 당대 최고의 선수로 거듭나기 어렵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헤럴드스포츠(충남 천안)=정근양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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