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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늘집에서]메이저 챔피언 양용은 다시 출발선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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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타인 챔피언십 기자회견 도중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양용은.


[헤럴드스포츠=이강래 기자]양용은(42)이 돌아왔다. 이번 주 충남 천안의 우정힐스CC에서 열리는 내셔널 타이틀인 코오롱 제57회 한국오픈에 출전하기 위해서다. 양용은은 비가 내린 20일 프로암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골프 클리닉 행사를 진행하는 등 외견상 평소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속내는 편치 않다. 양용은은 최근 많은 것을 잃었다. 메이저 우승으로 얻은 PGA투어의 5년짜리 풀시드도 잃었고 단란하던 가정도 잃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전성기의 기량도 잃었다. 양용은은 지난 주 홍콩오픈에 출전했으나 첫날 6오버파를 쳐 컷오프됐다. 앞으로 어떻게 선수생활을 꾸려 나가야 할지 마음 속이 복잡하기만 하다.

양용은은 메이저 대회에서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를 상대로 유일하게 역전우승을 거둔 선수다. 2009년 PGA챔피언십에서 그는 신들린 플레이를 펼치며 전 세계 골프팬들을 흥분에 빠뜨렸다. 마지막 18번홀의 경기 장면은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다. 기적에 가까운 하이브리드 샷과 절묘한 버디 퍼트, 그리고 낙담하는 우즈의 얼굴이 오버랩 된다.

당시 양용은을 다시 보게 된 계기가 있다. 8남매의 막내인 양용은은 PGA챔피언십 우승 직후 우승상금 135만 달러에 자신의 돈을 보태 형제들의 빚을 청산해 주고 승용차를 한 대씩 선물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본인은 돈이 없어 골프연습장에서 연습생으로 일하며 월세 15만원짜리 단칸방에서 살았지만 성공의 열매를 형제들과 나눌 줄 아는 넉넉한 그릇의 소유자였다.

그래서인 지 양용은에겐 따르는 후배들도 많다. 대표적인 예가 노승열과의 관계다. 양용은은 2010년 코오롱 한국오픈에서 까마득한 후배인 노승열을 상대로 10타차 역전우승을 거뒀다. 경기가 끝난 후 노승열은 열패감에 눈물을 흘렸다. 노승열 입장에서 이 정도면 웃는 낯으로 양용은의 얼굴을 보기 힘들다.

하지만 둘은 지금 가장 가까운 선후배 사이가 됐다. 교감과 신뢰가 쌓인 결과다. 노승열에게 메이저 우승을 거둔 선배는 최고의 멘토였을 것이다. 노승열이 지난 4월 취리히 클래식에서 PGA투어 첫 우승을 거뒀을 때 양용은이 공항에서 짐을 부치다 말고 대회장으로 돌아와 후배의 우승을 축하해 준 일화는 둘 사이가 어떤 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골프선수로서 양용은의 인생 또한 드라마틱하다. 일본투어에서 뛰던 2006년 막내 아들의 돌 잔치를 위해 귀국했다가 출전한 코오롱 한국오픈에서 우승해 인생역전에 성공했다. 당시 아시안투어와 공동주관으로 열린 한국오픈에서 우승해 유러피언투어 HSBC 챔피언스 출전권을 따낸 양용은은 그 대회에서 ‘골프황제’ 우즈를 누르고 정상에 올랐다.

HSBC 챔피언스 우승으로 자연스럽게 세계무대로 나가게 된 양용은은 미국PGA투어 퀄리파잉스쿨에서 낙방한 뒤 일년간 유러피언투어를 뛰었다. 그러나 잦은 예선탈락으로 좌절감을 맛봐야 했다. 이러다간 안되겠다는 생각에 브라이언 모그라는 미국인 스윙코치를 만나 그립부터 골프의 ABC를 다시 시작했고 2009년 혼다클래식 우승에 이어 PGA챔피언십까지 거머쥐는 만루홈런을 쳤다. 두 번째 인생역전이었다.

이제 양용은은 다시 출발선에 섰다. 8년전 골프인생의 도약대가 됐던 코오롱 한국오픈에 출전하며 세 번째 인생역전을 노리고 있다. ‘사람 좋으면 꼴찌’라는 메이저리그의 격언이 있지만 양용은에겐 이런 말이 해당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양용은은 내년 일본과 유럽투어, 그리고 2부 투어인 웹닷컴투어를 뛰려고 한다. ‘저니맨’으로 새로운 골프인생을 계획하고 있는 양용은이 부디 이번 코오롱 한국오픈을 통해 새로운 도전을 위한 활력을 얻었으면 한다. 그는 한국 골프가 배출한 아시아 유일의 메이저 챔피언으로 이렇게 스러져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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