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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구판 로마인 이야기 - 이준석의 킥 더 무비<티포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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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르 밀란과 AC 밀란의 더비전 (출처=인테르 밀란 공식홈페이지)


이탈리아 서포터, 아니 울트라스(Ultras)

축구장에 서포터가 없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예전 1980년대의 우리 축구장이 그랬습니다. 거기에는 선수들과 같은 유니폼을 입은 사람도 없었고, 휘날리는 깃발의 스펙터클도 없었고, 통일된 구호도, 노래도 없었죠. 가끔 흥에 겨운 몇몇 관중들의 유도로 “비 내리는 호남선~”과 같은 노래가 울려 퍼지긴 했지만, 어쨌든 낡은 비디오를 통해 보는 옛날의 축구장은 좀 허전한 느낌이 듭니다.

그렇다면 서포터는 언제 시작된 걸까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1900년대 초반 폭죽을 터뜨리고 깃발을 흔들던 브라질의 축구 문화, 토르치다가 1950년 브라질 월드컵을 계기로 유럽에 전래되었다는 견해가 우세합니다. 브라질 토르치다 문화가 대서양을 건너갔고, 크로아티아의 축구팀 하이두크 스플리트의 팬들이 1950년 리그 경기에서 폭죽과 노래로 유사한 응원을 하면서 스스로 ‘토르치다 스플리트'라고 칭한 것을 서포터의 시작으로 보고 있죠.

토르치다 문화는 유럽 각국에 영향을 끼칩니다. 잉글랜드 리버풀의 서포터인 더 콥은 자기네 고향의 자랑인 비틀즈의 노래를 개사하여 90분 내내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이탈리아 AC 밀란에서는 정치색 짙은 서포터 조직이 결성되어 축구장에서 시위대처럼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죠. 브라질의 토르치다 문화가 이탈리아 시위 문화와 결합한 축구 응원 방식은 흔히 ‘울트라스’라고 불리곤 합니다. ‘극도로', ‘초(超)’의 의미를 갖는 울트라라는 단어는 자기 팀만을 극단적으로 좋아하는 서포터들의 기호를 잘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울트라들의 활약 때문일까요? 아니면 통일 이전 여러 개의 도시 국가로 나뉘었던 역사 때문일까요? 이탈리아의 도시별 대항전과 같은 세리에 A는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사실 이탈리아의 독특한 축구 용어들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잉글랜드 서포터들이 ‘Come on! England(가자! 잉글랜드, 잉글랜드 파이팅! 이 정도?)’라는 표현을 쓴다면, 이탈리아 팬들은 ‘Forza! Milan!(힘내라! 밀란!)’이라고 말합니다. 축구라는 단어 자체도 ‘Football’이 아닌 ‘칼초’라고 불리죠.

축구뿐만 아니라 이탈리아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유럽 국가와 다르다고 합니다. 예전에 유럽 연합의 다른 국가와 이탈리아를 비교한 플래시 동영상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 동영상에 의하면 이탈리아인들은 성미가 급하고, 질서도 잘 안 지키고, 감정 변화가 심해서 금방 화를 냈다가도 금방 친해지는 등 기분파적인 성향을 나타냅니다.

그런 이탈리아인들이 축구에 열광하니 그들의 팬 문화도 꽤나 독특하고 재미있겠죠? 그래서 이탈리아의 극렬 축구팬들을 다룬 영화 <티포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티포지’라는 말 자체도 축구팬을 의미한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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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개봉한 영화 <티포지>의 포스터


6개 명문팀의 극렬 서포터가 벌이는 한바탕 난장판
영화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여섯 개 명문팀의 서포터들 이야기입니다. 각각의 이야기가 옴니버스 식으로 진행되다가 나중에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되죠.

라치오 vs 인테르 밀란
먼저 라치오의 서포터는 의사인 프로이에티입니다. 산부인과 의사인 그는 분만 중에도 TV를 통해 라치오의 경기를 볼 정도로 극렬 라치오 팬이지요. 게다가 응급실에 같은 로마를 연고로 한 숙적 AS 로마의 팬이 오면 치료를 거부할 정도로 구제불능입니다. 그런 그에게는 혼기가 찬 딸이 하나 있습니다. 어느 날 그 딸이 남편감을 데려오겠다고 합니다.

문제는 딸 남자친구의 아버지입니다. 그의 이름은 콜롬보이고 파일럿입니다. 콜롬보는 프로이에티 뺨치는 인테르 밀란의 극렬 팬입니다. 조종석을 온통 인테르 밀란의 머플러와 유니폼으로 장식한 콜롬보. 그는 위험천만하게 착륙하는 도중에도 인테르 경기의 라디오 생중계를 크게 틀어놓습니다. 비행기가 착륙하면서 라디오 전파가 잘 안 잡히자 아예 비행기를 급상승시킬 정도로 광팬이지요.

이 사실을 모르는 프로이에티는 상견례 자리를 라치오 팬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으로 잡습니다. 콜롬보는 아들과 함께 도착하고 기겁을 하게 되죠. 가게 곳곳에는 라치오의 엠블럼과 유니폼, 선수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후식으로 나오는 케이크는 아예 라치오 엠블럼 모양입니다. 화가 난 콜롬보는 인테르 밀란의 우월함을 외치며 프로이에티와 싸웁니다. 의가 상한 두 사람은 따로따로 라치오와 인테르의 경기가 열리는 로마 올림피코 경기장으로 향하죠.

과연 콜롬보와 프로이에티는 자기 자식들을 결혼시킬 수 있을까요?

AC 밀란 vs AS 로마
AS 로마 팬인 난도와 파비오. 난도는 언제나 노란색 옷을 입고, 파비오는 늘 붉은색 옷을 입습니다. 왜냐하면 AS 로마를 상징하는 색이 노란색과 붉은색의 얼룩무늬이기 때문이지요. AC 밀란 원정길에 오른 그들은 밀라노 시내에서 온갖 고생을 하게 됩니다. 바로 AC 밀란의 광팬인 갈리아니 때문입니다.

갈리아니는 밀라노에서 택시 운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택시가 범상치 않습니다. 택시의 지붕에는 택시 안의 TV와 연결되는 위성 안테나가 달려있어 하루 종일 AC 밀란의 경기가 중계되죠. 택시 안에는 온통 밀라노의 유니폼이 한가득입니다.

갈리아니의 집안은 더더욱 가관입니다. 집안 곳곳에는 실물 크기의 밀라노 선수 사진이 도배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라이벌인 인테르 밀란의 엠블럼이 새겨진 화장지로 볼일을 보는군요.

이처럼 택시 운전 중에도 AC 밀란의 경기에 넋을 놓고 있는 갈리아니는 곳곳에서 교통사고를 일으킵니다. 그게 하필이면 로마에서 원정 온 난도와 파비오의 차를 계속 박게 되죠. 계속 도망치는 갈리아니. 하지만 이들은 주세페 메아차 경기장(AC밀란의 홈구장)에서 마주치게 됩니다. 온갖 악연으로 점철된 이들에겐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하)편에 계속

#글쓴이 이준석은 축구 칼럼리스트로, 비뇨기과 전문의이다. 이 글은 저자가 2013년 3월 펴낸 《킥 더 무비-축구가 영화를 만났을 때》를 재구성한 내용이다. 축구를 소재로 한 영화에 대한 감상평으로 축구팬들로부터 스포츠의 새로운 면을 일깨우는 수작으로 큰 호응을 받았다(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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