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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예술가그룹 뮤추얼, 인현동서 ‘상리공생’을 외치다

  • 기사입력 2019-10-29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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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충무아트센터 제공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박정선 기자]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은 낡은 건물들, 그 안에서 쉴 틈 없이 움직이는 기계소리가 가득하다. 좁은 골목에는 오토바이를 개조한 삼발이가 가게와 가게를 잇는 교통수단으로 또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혹자들은 말한다. “어차피 사라질 곳”이라고. 하지만 서울 중구 인현동 인쇄골목은 여전히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무언가를 만들어가면서 말이다.

최근 이 골목에는 낯선 변화가 꿈틀거리고 있다. 인쇄업 종사자들로 가득했던 골목 곳곳에 젊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10월 12일부터 진행되고 있는 예술가 그룹 ‘뮤추얼’의 ‘상리공생: 인현시장과 인쇄골목’ 전시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귀한 삶의 터전인 이 곳을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기억하고, 공생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한다.

충무로에 터를 잡고 새로운 마을의 식구가 된 뮤추얼은 총 다섯 명의 여성 창작자로 구성됐다. 그룹의 리더 격인 패션디자이너 박종희를 시작으로, 영화감독 정수이, 작가 이현지, 그래픽 디자이너 홍석윤, 영상연출가 조윤하가 한 팀을 이루고 있다. 전공도 살아온 배경도 다른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인현동 골목에서 느낀 감정들 때문이었다.

“다섯 명이 비슷한 시기에 뉴욕에 머물면서 친해지게 됐어요. 친구의 친구, 그 친구의 또 다른 친구로 알고 지내면서 점점 자주 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관계가 이어지게 됐어요. 한국에 돌아와서 직장 없이 혼자서 뭘 한다는 것이 힘들었어요.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 친구들을 만나면 위안을 얻었어요.(웃음) 고민이 많다가도 이 친구들을 만나면 힘을 얻었던 것 같아요” (박종희)

“아무래도 한국사회사 주는 압박감과 틀에 맞춰진 삶의 방식 안에서 우리가 추구하던 방향을 공유하다 보니 더 가까워진 게 아닐까요. 작업실을 같이 쓰면서 ‘함께 작업물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하던 중에 서울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사업에 지원을 하게 됐죠. 아무래도 각자 생계를 위해 하는 일이 있는데, 버리면서까지 하기에 자본이 부족한 게 사실이니까요” (이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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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송두선 작가


이번 전시 ‘상리공생’은 서울 내 19개 자치구에서 활동하는 청년 예술가를 찾아 지역의 새로운 문화 예술 주체로 지원·육성하기 위해 올해 서울문화재단에서 첫 시행한 ‘지역형 청년예술단’ 사업의 일환이다. 해당 사업에 선정된 중구문화재단에서는 충무로 인쇄골목의 젠트리피케이션 이슈에 대해 이야기 한 프로젝트 그룹 뮤추얼을 최종 선정했다. 이들이 서울의 젠트리피케이션을 언급하는 것이 의아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이 곳에 자리 잡기 전 뉴욕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겪어 왔기 때문에 인현동에서 낯설지 않은 안타까움을 체감했다.

“사실 젠트리피케이션은 세계적인 현상이잖아요. 주로 아티스트가 옮겨간 거처를 따라서 발전이 되는 경향이 있어요. 뉴욕의 경우에도 소호에 아티스트들이 거주했는데, 번화가가 되면서 아티스트들은 쫓겨나고 첼시로 자리를 옮겼어요. 그러다 보니 첼시에 갤러리가 생기고, 또 아티스트들은 쫓겨나기를 반복했죠. 지금은 또 브루크린으로…. 그런 것들을 배우고, 직접 체감하면서 한국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인쇄골목이 그랬고요” (이현지)

이들은 비싼 임대료와 무한 경쟁이 펼쳐지는 정글 같은 서울에서 함께 ‘공생’하기 위해 충무로의 낡은 공간에 작업실을 꾸렸다. 각자의 집과의 동선을 고려한 선택이기도 하다. 한때는 번영했던 곳이지만 지금은 재개발과 변화의 바람이 가득하다. 우연히 자리 잡은 이 곳, 인현동에서 그들은 기존의 상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찾고자 했다.

“같이 살아가는 것에서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소통’이라고 생각했어요. 여기서 지내다 보니까 젊은 아티스트들, 젊은 상인들은 기존의 상인과 어울리지 못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어요. 뒤늦게 이 곳에 자리를 잡으면서 ‘어떻게 어울려야 하는가’를 물어보려고 한 젊은 아티스트를 찾아갔는데 한 번도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사이가 좋지도, 나쁘지도 않고 그냥 ‘무관심’인 거죠. 당장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자는 건 사실상 불가능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하자고 마음먹었어요. 일단은 이웃처럼 편하고 가깝게요” (박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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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충무아트센터 제공


뮤추얼이 인현동 인쇄골목 상인들과 소통하는 방식은 여느 전시와는 달랐다. 단순히 한 장소에 작품을 내거는 형식을 탈피하고, 하나의 둘레길을 조성했다. 인쇄골목 곳곳의 비어있는 상점들 중 세 곳의 빈 공간을 선정했고, 각각의 공간에 미디어아트, 영상, 설치미술, 퍼포먼스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인쇄골목의 질서와 생태계를 탐구하는 전시를 벌였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전시가 되고자 했죠. 살아 숨 쉬는 인현동 인쇄골목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처음 오신 분들의 심리적인 상황에 따라서 점점 더 이 곳을 알아가게끔 루트를 짰어요. 새로운 세상에 들어가는 느낌을 받고, 재개발 하는 곳도 지나치게 되고, 인쇄골목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전시를 본 사람들의 기억을 수집하고, 나와서는 상상을 하고 뛰어 놀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어요” (이현지)

“경계와 소통을 주제로 하고 있어요. 처음엔 낯선 환경이지만 저희의 시선으로 본 인쇄골목의 영상을 보고 ‘이런 사람들도 있구나’하면서 그들에 대해 알게 되는 거죠. 또 본인들의 생각을 적으면서 스스로의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마지막 공간에서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했어요”

어려움도 있었다. 인현동은 최근 재개발로 인한 철거와 공사장이 늘어나고, 곳곳에 ‘임대’ 공고문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매일 새롭게 지어지는 카페와 식당들, 소위 ‘힙하다’고 소문난 이곳을 찾는 외지인까지 빠르게 흐르는 변화의 바람은 오랜 시간 한 자리를 지켜온 사람들에게는 날선 경계심의 대상이었다. 뮤추얼은 그 ‘벽’을 전시 준비를 위한 취재 과정에서 고스란히 느껴야 했다. ‘공생’의 방법을 찾는 것보다 날선 경계를 허무는 것이 우선이었다.

“처음엔 정말 막막했어요. 현장에서 뭔가 하긴 해야겠는데, 고민하고 준비하는 시간이 족히 2달은 걸린 것 같아요. 처음엔 말을 해도 쳐다보지도 않으세요. 견제하는 느낌이랄까요. 인터뷰 의사를 물어보기도 전에 겁을 먹었던 거죠. 상인 분들에게 진심을 보여주고, 경계를 허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알고 보니 포럼까지 열면서 어떻게 하면 자신들이 이 안에서 ‘벽’ 없이 사람들이 인쇄에 대해 좋고, 쉽게 접할 수 있는지 노력하고 있더라고요” (조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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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송두선 작가


힘든 과정을 거쳐 인쇄골목 상인들의 입을 통해 듣는 그 곳의 풍경은 ‘기억의 방’에서 영상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옛 추억을 꺼내면서 촉촉해 진 눈빛의 사장님, 은퇴 후의 상황을 생각하면서 과거를 그리워하는 사장님, ‘어차피 다 죽을 동네인데 뭘 찍냐’며 터전을 잃을 위기에 무기력함을 보여주는 사장님 등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뮤추얼의 시선으로 그려진 이 영상은 관람객들에게도 전달됐다.

“(전시 전후로)엄청 달라졌어요. 일단 사장님들이 그래요. 처음엔 분명 경계와 벽이 느껴졌는데, 결과물을 보고 좋아하시더라고요. 한 사장님은 ‘젊은 애들이 여기 와서 우리 이야기를 해준다는 게 정말 고맙고 대단하다’고 했어요. 다들 ‘아쉽다’는 말 뿐이었는데 실질적으로 전시를 통해 보여주셔서 감사하다고요. 외부인이 전시를 보러오는 것에 대한 성취감도 있는데, 사장님들이 오면 우리가 소통을 했구나 싶어서 감동적이더라고요. 하하” (조윤하)

“아! 전시를 보러 온 사람들은 한 얘기도 있어요. 저희가 전시 공간으로 꾸미면서도 붙어있던 ‘임대’ 공고를 굳이 떼지 않았거든요. 실제로 임대를 하신 분도 있고, 장난 식이지만 저희가 전시해 놓은 상태 그대로 임대하고 싶다는 분도 있었어요. 장난으로 한 말일수도 있지만, 조금의 효과는 있는 것 같아 뿌듯해요” (홍석윤)

특히 마지막 공간인 ‘종이에 대한 믿음’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인쇄골목에서 버려진 파지들을 모아 종이가 주는 촉감과 온도, 그리고 잉크의 냄새를 즐길 수 있도록 한 공간이다. 누군가의 손길과 노력이 묻어 있는 종이가 버려진 후에 또 다른 사람에겐 놀이 공간이 된다. 고립되다시피 한 인쇄골목에 새로운 사람들이 유입되는 지금, 그 둘 집단이 함께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뮤추얼의 ‘상리공생’의 취지가 이 곳에 집약되어 있는 셈이다.

처음 ‘상리공생’ 전시를 기획하면서도 1회성에 그칠 것을 염려해 지금의 전시로 방향을 바꿨던 뮤추얼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전시를 올리고 난 후에도 ‘공생’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작품에만 국한한 예술 활동이 아닌, 사회적 현상에 대한 인지와 적극적인 반응으로 예술관을 구체화하고 확장했다. 경계를 허물고 이들을 온전히 받아들여준 인쇄골목의 상인들과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 뮤추얼, 이들이 보여준 ‘공생’의 가치가 시사하는 바는 분명했다.

“인현시장과 인쇄골목을 다루고 싶었는데, 취재해보니 이 동네들이 담고 있는 이야기가 너무 많더라고요. 그래서 인쇄골목에만 집중했어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인현시장도 깊숙이 들여다보고 싶어요” (박종희)

“저희한테 구세주 같은 분이 있었어요. 팜플랫부터 신문까지 다 도와주신 분인데, 처음에 촬영하는 것도 도와주시고 인터뷰도 참여해주신 인쇄소 사장님이에요. 다음날엔 성에 안 찼는지 우리를 데리고 직접 돌아다니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으셨죠. 사장님도 우리한테 애착이 생기셨나봐요. (웃음) 영상에 있어서는 조금 아쉬움이 남아요. 사장님이 술 마시면서 우스갯소리로 영화제까지 가자고 하시더라고요. 준비하면서 어느 정도 인프라는 생긴 것 같으니, 아쉬웠던 부분들에 대해서는 다른 방식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볼 것 같아요” (조윤하)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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