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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바비킴, 초심으로 돌아온 데뷔 25주년 “연애는 체념 상태지만…열심히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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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스타크루이엔티 박찬목 작가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문다영 기자] 바비킴은 멀고도 험한 길을 걸어왔다. 데뷔 20년이 되던 해가 고비였다. 음악 하나로 먹고 살겠다며 부친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군 성공이 모조리 날아가는 판국이었다. ‘기내에서의 난동’ 이 일곱자만 본 이들이 그에게 비난을 퍼부었다. 나중에야 항공사 실수로 벌어진 일이라는 사실이 알려졌지만 그는 도리어 가수로서의 은퇴를 생각했다. 그러나 부모를 위한 아주 작은 자리에서 쥔 마이크가 뮤지션 바비킴에게 다시 숨결을 불어넣었다. 그렇게 그는 다시 한걸음씩 걷기 시작했다. 그 덕에 데뷔 25주년에 새 앨범 ‘스칼렛’을 내놓을 수 있었다. 다시, 소년같은 눈빛으로 대중 앞에 선 바비킴을 5월의 끝자락,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 오랜만에 내놓은 앨범입니다. 만족스럽나요

“지난해 2월부터 작업을 시작했고 12곡 넘게 작곡한 것 같아요. 미니앨범을 내기로 결정하고 나서 각 노래에 특색을 담았죠. 비슷한 노래들을 버리고 선별한 게 5곡이에요. 음악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만족감이 높은 앨범입니다. 처음 음악할 땐 취미였고, 나중엔 직업이라는 생각으로 지쳐 있는 상태에서 곡을 만드는 일이 오랜기간 이어졌어요. 여기서 탈피해 초심의 마음으로 정말 즐겁게 만들었습니다”

▲ 앨범명이 ‘스칼렛’인 걸 두고 갖은 추측이 쏟아집니다

“예전에 사귀었던 사람 아닙니다. (웃음) 그저 예쁜 이미지, 빈티지스러운 느낌을 찾다보니 ‘스칼렛’으로 정하게 됐어요. 정말 스칼렛은 이미지일 뿐 성격이나 얼굴 이미지 같은 것도 정한 것이 없습니다. 앨범 수록곡 중 사귀었던 옛 연인과 이야기를 담은 곡은 있어요. 20대 중반 때 좋아했던 여성인데 아마 곡을 들으면 자신일 거라고 생각할 것 같아요. 소식은 몰라요. 나와 동갑이었는데 난 미혼이고 혹시 아이가 대학 들어갔다 그런 소식을 듣게 되는 건 좀 그렇잖아요.(웃음) 곡을 만들며 당시의 설렘을 생각했어요. 무척 설렜는데 다시 그 설렘의 상태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내가 한번 푹 빠지면 미칠 정도라 잠도 못자는 스타일이거든요. 앨범에 있는 곡으로 지금 제 상태를 말하자면 5번 곡이죠. 연애는 체념상태입니다”

▲ 4년 6개월만의 컴백입니다. 타블로가 피처링을 하기도 했어요. 동료들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주변 동료들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나도 만들다 보니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많이 부드러워졌다는 반응들이 주를 이루는데 사실 나는 퀄리티가 높아졌다는 말을 듣고 싶었어요. (웃음)
타블로는 감동이었어요. 활동하지 않는 동안 다들 연락이 끊긴 상황에서 타블로가 떠올랐죠. 당시가 한참 에픽하이가 신곡을 내고 활동하는 중이었어요. 직접 전화를 했는데 유럽 투어 가야 한다고, 바쁘다더라고요. 빠르게 한국에 들어오는 일정들을 말해주며 그 때 녹음할테니 이메일로 곡 보내달라는 말을 하고 끊더라고요. 울컥하더라고요. ‘음원을 들어보고 할 수 있으면 할게요’가 아니라 무조건 할테니 보내달란 말에서 진심을 느꼈습니다. 2014년에 마지막으로 보고 처음 연락한 거였는데 나에 대한 믿음이 느껴져서 고맙고 감동 받았어요. 이번에도 만나지는 못했어요. 서로의 녹음실에서 녹음했으니까. 믹싱도 ‘형 스타일대로 하라’더라고요. 서로 간 믿음이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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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스타크루이엔티 박찬목 작가



▲ 오래 쉬었습니다. 어떻게 지냈나요

“주 5일씩 등산을 했어요. 올라가는 내내 감정이 수십 번씩 바뀌어요. 이대로 계속가면 5분 뒤엔 더 높은 곳이다 했다가 순간적으로 스트레스 받고. 그러다 조금 더 참으면 올라갈 수 있다 이런 생각들을 반복하며 산을 탔어요. 정상을 찍고 내려올 땐 다시 없을 행복감을 느꼈고요. 긍정적인 생각과 스트레스를 반복해가며 단단해진 것 같아요. 혼자 있는 시간들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음악 관련한 프로그램, 음원 모두 멀리하고 살았어요. 아예 은퇴했다고 생각하고 살았어요. 이참에 은퇴를 하고 야구코치를 해야 하나 생각도 했죠. 예전에 야구선수였었거든요. 그러다 지난해 1월, 부모님 50주년 기념 파티가 그 생각을 바꿨어요. 부모님 친구분들, 가족분들 모신 자그마한 파티였어요. 노래방 기계를 가져다 놓고 노래를 부르는데 만감이 교차했어요. 부모님이 내가 노래하는 걸 보며 환한 미소를 짓는 걸 보고 ‘다시 음악해야겠다’ 생각했죠”

▲ 자발적인 휴식은 아니었습니다. 활동을 시작한 바비킴 기사마다 항공사와 일이 언급되고 있어요. 팬들이 더 억울해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런 일은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가 공인이고 내 잘못된 행동으로 물의를 일으킨 것은 오로지 내 책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더 오랜 기간 자숙한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내가 물의를 일으켰기 때문에 다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요. 자라면서 ‘남에게 피해 주지 말자’라는 생각으로 살았어요. 그런데 그 사건에서는 많은 분을 놀라게 했죠. 내용이 어떻든지 간에 내가 성숙하지 못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스스로 고개를 숙였어요.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 ‘다시 음악을 해야겠다’ 생각한 이후 첫 방송이 ‘복면가왕’이었습니다. 어땠나요

“2년 전부터 계속 섭외가 왔었던 프로그램이에요. 음악 하겠다고 결심하고 녹음 중에 섭외가 또 와서 출연했어요. 내가 나가면 분명히 알텐데 재미없을까 싶기도 했죠. 다행히 PD가 요즘엔 누구나 알만한 개성있는 목소리라도 열심히만 하면 된다고 해서 용기냈죠. 아니나 다를까 다들 아시더라고요. 방송 보셨나요? 가면 안이라서 눈 감고 열심히 불렀는데 방송으로 보니 내가 어쩔 줄을 몰라 하더라고요. 첫곡부터 불안했어요. 패닉상태도 왔었고요. 신인도 아닌데 그랬다고 소속사 식구들에게 혼났어요. 5년여 만에 무대에 선 건데 이해해달라고 용서를 구해야 했죠(웃음). 엉망이었지만 그럼에도 서고 싶었던 무대라고, 그리웠다고 생각했어요. 음악하는 것 중 콘서트가 가장 좋습니다. 작은 규모로, 아기자기하게 하는 콘서트를 정말 좋아해요. 8월 말쯤 공연을 계획 중인데 소극장 공연으로 팬들과 만나고 싶어요”

▲ 간만에 돌아온 가요계를 보는 소회도 남다를 것 같습니다

“요즘 뮤지션들 잘 몰라요. 그런데 노래면 노래, 랩이면 랩 무서울 정도로 잘하는 후배들이 짧은 시간 안에 많이 생겼더라고요. 이래서 세계적으로 K팝을 인정하는구나 생각될 정도예요. 아이돌 뿐 아니라 힙합 잘하는 친구들도 정말 많고 특히 보컬 쪽으로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눈에 띄었던 친구들은 재즈틱하게 R&B하는 하는 딘, 자이언티, 이하이, 손승연…. 너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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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스타크루이엔티 박찬목 작가



▲ 차트 욕심은 내려놓은 거라 봐도 될까요 (웃음)

“차트 욕심은 옛날부터 내려놨어요. ‘고래의 꿈’ 때도 차트에 대해서 잘 몰랐고요. 차트 올라가면 좋죠. 하지만 음원차트에 집착하게 되면 음악도 가식적으로 나올 것 같아서 ‘원래 하는 대로 하자, 중심을 잡자’ 다짐했죠. 트렌디한 장르 등 다양하게 시도해보고 싶기도 하지만 여태 해왔던 음악을 괜히 흔들면 생명이 짧아질 것 같아요. 편하게, 꾸준히 오래 가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열심히 살게요(웃음)”

▲ 여태 해왔던 음악을 이어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부가킹즈는 활동하지 않는 건가요?

“계속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모두의 마음이 같다면 언제든 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다만 각자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아서 활동을 중단한 상태죠. 주비트레인이 몇 년 전부터 하고 싶어하는 게 많았어요. 주비트레인은 레스토랑하다 지금은 DJ를 하고 있어요. 무대(오르는 건) 생각하고 싶지 않대요. 5년 전쯤 ‘들국화가 십 몇 년 만에 뭉쳤지 않나. 그렇게 하고 싶다’는 얘기를 한 적 있어요. 그에게 시간을 주고 싶어요. 간디(Gan-D)는 무대에 서고 싶다면 언제든 불러 달라지만 요리 쪽으로 푹 빠져서 친구와 함께 요식업에 뛰어든 상태에요. 나중에라도 세 사람이 같은 마음이 되면 언제든 하고 싶어요. 몸이 따라준다면 말이죠(웃음)”

▲ 어느덧 데뷔 25년차가 됐습니다. 돌아보면 어떤 시간이었나요. 또 앞으로의 바비킴은 어떤 모습일까요

“절반은 무명이었고 절반은 사랑받은 기간이었어요. 무명 때는 열정 하나만으로 신나게 음악을 했어요. 많은 경험이 쌓이고 운좋게 사랑받게 되면서 콘서트도 하고 상도 탔죠. 공인으로서 할 수 있는 것도 있고 못하는 것들도 있었기 때문에 각각 장단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25년 동안의 터닝포인트라면 ‘고래의 꿈’이 아니었나 싶어요. 아버지가 음악하는 걸 반대하셨었어요. 끝까지 고집 부리던 내가 무명시절 마지막 앨범으로 내겠다고 했던 게 ‘고래의 꿈’이었어요. 그때 아버지가 트럼펫을 연주해주셨죠. 그 곡으로 사랑을 받게 됐기에 큰 의미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계속 음악을 해나가겠죠. 70~80대가 되면 아무래도 큰 규모보다는 건반, 기타, 베이스 등 나와 부드럽게 어우러지는 노래들을 하고 있을 것 같아요”

▲ 무엇보다 팬들이 오래 기다렸습니다. 기다려준 팬들에게 하고픈 말이 있다면 해주세요

“말 그대로 오래 기다려주셔서 고맙고 행복합니다. 정말, 콘서트를 통해서 사랑에 보답해드리겠습니다. 활발하게 활동도 해야 할 것 같고요. 콘서트는 투어를 하면 더 좋겠고, TV를 통해서도 더 자주 만나뵙게 될 것 같습니다. 전보다는 자주 TV에 출연할 생각입니다. 좋은 프로가 있다면 예능도 출연하겠지만 사실 예능 공포증도 있어서요. 아무튼 음악 뿐 아니라 다방면에서 열심히 살려 합니다. 열심히 사는 바비킴이 되겠습니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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