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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굿바이 ‘붉은 달 푸른 해’] 지옥문 앞에서 보여준 ‘살아있음의 기회’ (종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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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MBC 방송화면)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손예지 기자] ‘붉은 달 푸른 해’가 짙은 여운을 남기며 종영했다.

16일 방송한 MBC ‘붉은 달 푸른 해’(극본 도현정, 연출 최정규 강희주) 최종회에서는 모두의 지옥이 드러났다.

차우경(김선아)은 동생 세경(채유리)의 시체를 찾았다. 분노한 우경은 시체 앞에 허진옥(나영희)을 데려왔다. 그 자리에서 진옥은 30년간 숨겨온 비밀을 모두 털어놓았다. 세경은 5살의 나이에 진옥에게 학대받다 사망했으며, 이 충격으로 우경은 가족과 관련한 기억을 잃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진옥은 우경에게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다”라며 “나도 고통받을 만큼 받았다”고 토로했다. 진옥의 적반하장 태도에 우경은 “고통은 내 동생이 받았다”고 울부짖었다. 하지만 우경은 진옥을 해칠 수 없었다. 세경의 환영이 그의 폭주를 막았기 때문이다. 우경의 연락을 받고 나타난 강지헌(이이경)이 직접 복수하지 않은 데 대해 고마워 하자 우경은 “내 동생 세경이가 하지 말랬다”고 답했다.

이후에도 우경은 붉은울음과 연락을 유지했다. 그러다 마침내 붉은울음에게 진옥의 심판을 부탁했다. 이에 진옥의 집에 붉은울음이 들어서며 그 정체가 밝혀졌다. 바로 윤태주(주석태)였다. 하지만 이는 모두 우경이 파놓은 함정이었다. 윤태주가 나타나자 숨어있던 지헌과 진수영(남규리)이 그를 체포했다.

경찰 조사에서 태주는 친동생 은호와 있었던 일을 모두 고백했다. 태주는 은호의 불면증을 없애기 위해 최면 치료에 나섰다가 동생의 아픈 과거를 알게 됐다. 태주는 “은호가 겪은 지옥을 보게 됐고 분노했다”며 이를 계기로 ‘붉은울음’이라는 이름 뒤에서 아동학대범을 처단해 왔다고 설명했다.

실질적인 살인은 은호에게 맡기고 자신은 정보 수집을 담당했다던 태주는 시완(김강훈)과 우경에 한해서만 자신이 직접 심판에 나서고자 했던 이유도 공개했다. 그는 “은호가 자기가 겪은 지옥에 대해 말할 때 맨 처음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며 동생의 학대를 곁에서 지켜봐야만 했던 시완과 우경의 죄책감에 동질감을 느꼈다고 했다.

붉은울음 사건이 마무리된 뒤 지헌은 은호가 죽은 등대 앞에서 우경을 다시 만났다. 지헌은 우경에게 아이들을 성가신 존재로 여겼던 자신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에 대한 책임감이) 무거운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기꺼이 안고 가고 싶은 뜨겁게 벅차는 책임감, 이래서 사람들이 아이를 갖는구나 처음 느꼈다”고 했다. 극 초반 임신한 여자친구에게 낙태를 종용했던 지헌의 변화가 분명히 드러난 대목이었다.

그런 한편 우경은 진옥을 용서할 자신이 없다면서도 “우리 은서(주예림)가 할머니를 많이 좋아한다. 아마 그게 태주 선배가 분노했던 살아있음의 기회, 가능성일 것”이라며 자리를 떠났다. 이어 집으로 돌아간 우경이 어린 세경의 환영을 다시금 따뜻하게 안아주는 장면으로 ‘붉은 달 푸른 해’의 막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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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MBC 방송화면)



■ 히트작은 아니지만… ‘붉은 달 푸른 해’, 웰메이드 드라마가 틀림 없는 이유

끝까지 여운이 짙다. 과연 웰메이드 드라마라고 부를 만하다. 물론 ‘붉은 달 푸른 해’를 히트작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 드라마는 방영 내내 4~5%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는 수목극 1위를 지켰던 전작 ‘내 뒤에 테리우스’ 대비 반토막 난 수치다. 심지어 지난 9일 KBS2 ‘왜그래 풍상씨’가 새로 시작하면서 수목극 꼴찌로 밀려나기까지 했다.

그러나 드라마의 작품성과 시청률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 ‘붉은 달 푸른 해’는 아동학대라는 민감한 사회문제를 소재로 다룬 것만으로 의미가 남다르다. 가정은 물론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아동학대 사례를 에피소드로 구현했으며, 피해 아동이 현행 법에 따라 원가정에 복귀하는 모습을 통해 미흡한 제도를 꼬집기도 했다. 저조한 성적과는 별개로 ‘붉은 달 푸른 해’가 수작(秀作)이라고 평가받아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는 드라마는 많다. 아동학대를 다룬 드라마도 ‘붉은 달 푸른 해’ 이전에 여러 편 방송됐다. ‘붉은 달 푸른 해’가 웰메이드 드라마인 또 다른 이유는 이 작품만이 가진 차별점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은유다.

초반의 ‘붉은 달 푸른 해’는 의문의 살인 사건과 시(詩)를 결합하는 시도로 색다름을 꾀했다. 실제로 극 중 사건 현장마다 적힌 의미심장한 시구들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범행 동기를 추리하게 만들었고, 일련의 사건들이 아동학대와 관련됐다는 결론을 도출하게 했다.

그런가 하면 현실 고발 작품이 맞닥뜨리기 쉬운 딜레마도 은유를 통해 해결했다. 사실적인 묘사와 선정성 논란 사이의 문제다.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리려다 보면 자칫 자극적인 장면만 남을 수 있는데 특히 아동학대를 연출하려면 고민해야 하는 지점이 많다. 피해자를 연기하는 어린 배우들이 촬영으로 하여금 트라우마를 겪을 가능성과 폭력 장면이 실제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여기서 ‘붉은 달 푸른 해’의 배려심이 돋보였다. 은호의 에피소드가 대표적인 예다. 극 중 은호는 아동학대 피해자로, 이에 대한 트라우마와 복수심에 아동학대범을 대상으로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인물이다. 은호는 어린 시절 지내던 아동센터 원장에게 신체적·정서적 폭력을 당했다. 그 중에는 성폭력도 포함됐는데 주목할 점은 드라마가 이를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신 원장이 지팡이나 총 등 기다란 물건으로 은호를 위협하는 장면이나 은호가 “큰원장님은 시를 사랑하듯 나를 사랑하는 거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하는 데서 그간의 학대를 암시, 연민의 감정을 자아냈다. 그렇다고 해서 ‘붉은 달 푸른 해’가 은호의 범죄를 미화한 것은 아니다. 극 중 은호는 “난 살인자가 아니다. 아이들을 구해낸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에 우경이 “누구나 아플 수 있고 누구나 분노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살인자가 되진 않는다”고 강조하는 장면으로 ‘정의 구현’에 대한 ‘붉은 달 푸른 해’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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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MBC 방송화면)



■ 아이들이 이끌고 어른들이 받쳤다… ‘붉은 달 푸른 해’의 일등공신들

무겁고 어두운 소재를 다룬 작품이었던 만큼 ‘붉은 달 푸른 해’를 통해 극한의 상황과 감정을 표현해야 했던 배우들의 공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큰 박수를 받아야 하는 배우는 아역 연기자들이다. 여동생을 잃은 트라우마 때문에 건물 계단에서 투신하는 모습으로 ‘붉은 달 푸른 해’ 1회의 문을 연 시완 역의 김강훈, 우경의 사랑스러운 딸 은서를 맡은 주예림, 이기적인 엄마 때문에 방치되어야 했던 희수 역의 서이수, 김여진(동숙 역)과 모녀지간으로 호흡하며 능숙한 연기를 보여준 소라 역의 이한서, 아빠를 두려워하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하나 역의 이해온, 부모의 잘못된 교육열에 시달리는 빛나를 소화한 유은미, 이른바 ‘녹색 옷을 입은 소녀’로 드라마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책임진 채유리 등이다.

아역들이 저마다의 상처를 품은 아이들을 연기하며 시청자들을 ‘붉은 달 푸른 해’에 몰입하게 만들었다면, 베테랑 성인 연기자들이 그 뒤를 탄탄히 받쳤다. 우선 극 중 모든 사건의 중심에 선 우경 역의 김선아는 폭 넓은 스펙트럼을 증명했다. 밝고 사랑스러운 매력이 강점으로 꼽혔던 김선아는 ‘붉은 달 푸른 해’에서는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줬다. 아동상담가로서의 차분한 모습부터 캐릭터가 가진 모성애, 끔찍한 사건들과 과거를 마주하고 괴로워 하는 모습 등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이이경도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지난해 JTBC ‘으라차차 와이키키’를 통해 강렬한 코믹 연기를 선보였던 이이경은 ‘붉은 달 푸른 해’에서는 냉철한 형사 지헌 역으로 정반대 색깔을 드러냈다. 극 후반부에는 잘못 쏜 총으로 은호가 사망한 뒤 죄책감에 시달리는 지헌의 모습을 밀도있게 그려냈다. 그런가 하면 지헌의 후배 형사 수영 역을 맡은 남규리의 활약도 눈에 띄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과 짧게 자른 머리카락으로 외모부터 확 달라진 모습을 보인 남규리는 강직한 눈빛과 말투로 수영의 카리스마를 표현했다.

무엇보다 인상깊었던 배우는 은호를 연기한 차학연(빅스 엔)이다. 은호는 ‘붉은 달 푸른 해’ 제작진이 “부드럽고 선한 용모 뒤에 비밀을 감추고 있는 남자”라고 소개한 만큼 존재 자체만으로 의문스러운 캐릭터였다. 이에 따라 극 초반에는 대사도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학연은 특유의 가냘픈 선이 돋보이는 외모와 미성으로 캐릭터의 이미지를 십분 살렸다. 은호를 둘러싼 진실이 드러난 뒤에는 감정 연기를 폭발시키며 시청자들을 몰입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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