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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송 잇 수다] ‘라이프 온 마스’에 투영된 여성, 그리고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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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OCN)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손예지 기자] OCN ‘라이프 온 마스’(연출 이정효, 극본 이대일)는 2018년의 형사 한태주(정경호)와 1988년의 형사 강동철(박성웅)의 공조를 그린다. 브로맨스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홍일점 윤나영(고아성)의 존재감도 이에 못지않다. 1988년, 수사관의 꿈을 품고 경찰이 됐으나 여자라는 이유로 커피 배달이나 잠복 형사의 빨래 등 잔심부름만 해온 나영이 2018년의 남자 태주를 만나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또 다른 희열을 선사하는 것.

영국의 동명 드라마를 한국 안방극장에 옮겨오면서 시청자들이 ‘라이프 온 마스’에 기대한 것 중 하나는 시대의 고증이다. 이에 대해 이정효 PD는 소품의 사용보다는 과거 형사가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사건을 해결하려고 했던 수사방식 등 사회적 분위기를 담고자 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맥락에서 여자 순경 나영을 대하는 남자 형사들의 태도도 1988년이라는 시간적 배경의 현실감을 부여하고 있다. 이는 인물들의 ‘말’로서 가장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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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OCN)


#태주의 존중 “고마워요, 윤나영 순경”
1회에서 나영은 서울에서 전출 온 태주를 살뜰히 챙겼다. 태주는 고마움을 표하고자 “그런데 내가 어떻게 불러야 하냐”고 물었다. 이에 나영은 “윤 양. 미스 윤. 윤 마담. 아니면… 어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편한 대로 부르라”고 덧붙였다. 그러자 태주가 이렇게 물었다. “이름이 없어요?”

물론 이름 석 자 버젓이 있지만, 서에서 나영을 이름으로 불러주는 이는 거의 없었다. 나영이 의아해하며 이름을 알려주자, 태주는 “고마워요, 윤나영 순경”이라고 말했다. 이는 나영이 직장에서 처음으로 받아본 존중이었다. 수사에는 한 번도 참여해보지 못한 나영이 남자 형사들의 뒤치다꺼리를 도맡아 하는 데 그 누구도, 심지어 자신조차 의문을 품지 않았던 시대다. 태주의 한 마디는 나영의 마음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다. 변화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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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OCN)


#동철과 태주의 온도 차이 “다 큰 처녀가 밤늦게…” vs “궁금했던 게 뭐죠?”
2회에서는 살인사건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가 그려졌다. 동철은 용의자를 붙잡아 다그치는 식의 일차원적 수사를 보여줬고, 태주는 부검을 통한 과학 수사에 의지하고자 했다. 그 사이에서 나영은 또 커피를 탔다.

그러나 나영도 나름대로 수사를 펼치고 있었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다 중퇴한 나영은 사건의 유형과 범죄자 심리를 분석하는 것에 재능이 있었던 것. 이에 혼자 사건 현장을 찾은 나영을 동철과 태주가 발견했다. “보고서 정리하다가 궁금한 게 생겼다”는 나영에게 두 남자 형사는 서로 다른 반응을 보였다.

동철은 나영을 보자마자 “다 큰 처녀가 밤늦게 이런 데나 오고, 집에 들어가라”고 면박을 줬다. 그런가 하면 “미쓰 윤, 대학도 나왔냐”고 무시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동철이 나영을 동료로 인정하지 않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억압받던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된 대사다. 반면 태주는 나영에게 “무엇이 궁금했냐”고 물었다. 나영이 분노범죄가 아니라고 추측하자 그 근거를 묻기도 했다. 태주의 질문에 나영은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고, 이는 사건 해결의 중요한 단서가 됐다. 사회에서 무시 받던 여자가 실상 시대를 앞설 만큼 뛰어난 재능을 지녔음을 보여주며, 성차별이 얼마나 시대착오적 발상인지를 꼬집은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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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OCN)


#동철의 첫 인정 “사내 둘이 쓸 데가 없어”
3회에서 나영은 처음으로 수사에 합류하게 됐다. 백화점 손님으로 위장해 사건 용의자들을 유인하는 역할이었다. 그러나 나영의 주위에 몰려있는 형사들에 용의자들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도망쳤다. 그러던 중 막다른 길에 다다른 한 용의자가 자신을 쫓아온 나영을 인질로 잡고, 뒤따라 온 동철과 태주를 협박했다.

동철과 태주가 나서려고 했으나 나영이 빨랐다. 나영은 업어치기로 용의자를 가볍게 제압했다. 깜짝 놀란 동철은 나영에게 박수를 보냈다. 나영의 활약으로 용의자 한 명은 체포에 성공했다. 반면 다른 남자 형사들은 나머지 용의자를 놓쳤다. 이에 동철은 나영의 활약을 대신 전하며 “사내 둘이 쓸 데가 없다”고 호통쳤다. 동철이 처음으로 나영을 인정한 순간이었다. 이때에도 동철은 나영을 ‘미쓰 윤’이라고 불렀지만, 그가 나영을 후배 경찰로서 칭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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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주의 격려 “윤 순경 같은 사람이 꼭 필요할 겁니다”
4회에 이르자 나영은 사건 분석에 더욱 힘쓰게 됐다. 퇴근도 미루고 열을 올렸다. 이를 지켜본 태주는 “혼자 다 한 것이냐”며 감탄했다. 그러면서 “프로파일링에 도움이 되겠다”고 말했다. 1988년에는 아직 도입되지 않은 방식이라 나영이 고개를 갸웃하자, 태주는 “범죄자 유형을 추정하는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나중에 윤 순경 같은 사람이 꼭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영은 설레는 얼굴로 “그랬으면 좋겠다”고 웃음 지었다.

1988년의 남자가 모두 동철 같았던 것도, 2018년의 남자가 모두 태주 같은 것도 아니지만, ‘라이프 온 마스’는 사회의 인식이 여성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브로맨스 드라마를 표방하는 ‘라이프 온 마스’가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물론 극의 흐름 때문에 나영의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충분치 않다는 점은 아쉬움을 남긴다. 정경호 역시 “동철이나 태주는 이야깃거리가 많다. 캐릭터 설명이 충분해 역할에 몰입하기 쉽다. 반면 윤 순경은 설명이 풍부하지 않다”고 말했었다. ‘라이프 온 마스’ 첫 방송 전 네이버 V 라이브에서 진행한 ‘드라마 토크’에서다. 정경호는 이어 “그런 윤 순경을 고아성의 입장으로 잘 표현해주고 있다. 윤 순경과 연기하면 기분이 좋다”고 엄지를 추켜세웠다.

정경호의 말대로다. 어쩌면 두 남자 주인공의 조력자로만 그칠 수 있었던 나영이란 캐릭터가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데는 고아성의 공이 크다. 특히 고아성은 1980년대의 말투, 이른바 ‘서울 사투리’를 제대로 사용하며 극의 현실감을 높였다. 4살 때 아역으로 배우를 시작한 고아성은 성인이 된 뒤 SBS ‘풍문으로 들었소’(2015)의 임신한 고등학생 서봄, MBC ‘자체발광 오피스’(2017)의 흙수저 계약직 은호원 등을 연기했다. 주로 당대 사회의 주요 이슈를 다룬 드라마에서 현실적인 캐릭터를 맡아온 것. ‘라이프 온 마스’는 이런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 현재가 아니라 과거의 캐릭터를 현실적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다소 어려운 미션을 받았다. 그러나 고아성은 이 역시 자신만의 색깔로 소화해냈다. 말투는 물론 표정과 행동 등 사소한 것 하나까지 그 시대에 돌아간 듯 인물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캐릭터 내면의 주체성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라이프 온 마스’가 이제 막 4회를 마친 가운데, 나영이라는 인물의 변화와 더불어 이를 그려내는 고아성의 연기가 더욱 기대된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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