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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김희애가 ‘허스토리’ 마지막 촬영 후 눈물 흘린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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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애(사진=yg엔터테인먼트)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남우정 기자] “촬영 끝나고 막 울었어요”

올해로 데뷔한 지 35년이 된 배우 김희애는 ‘허스토리’로 새로운 경험을 했다. 연기 인생 통틀어 촬영을 끝내고 눈물을 보인 적은 처음이었다. ‘허스토리’의 무게가 베테랑 배우에게도 어마어마했다는 사실이 몸소 전해졌다.

‘허스토리’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간 23번이나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를 오가며 일본 정부와 싸운 위안부 할머니들의 ‘관부 재판’ 실화를 다룬 작품으로 김희애는 할머니들의 재판을 지원하는 사업가 문정숙 역을 맡아 열연했다. 김희애 스스로 ‘터닝포인트’가 된 작품이라고 할 만큼 남다른 의미가 있다.

▲ 여성 캐릭터가 많이 나오는 영화는 오랜만이에요. 배우로서도 문정숙은 반전 캐릭터 같아요.

“매번 다른 캐릭터를 연기했지만 이번엔 더 달랐던 역할이에요. 부산 사투리, 일본어, 할머니들과 같이 해야 하는 신들이 있어서 배우로는 도전이었어요. 앞으로 나아가고 인정받고 싶은 게 아니라 그동안 내가 쌓아온 커리어가 있는데 망신당하겠구나 싶었어요. 사투리 때문에요. 이번 작품을 하면서 역사를 알게 됐고 최대한 진심을 가지고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당연히 연기도 잘해야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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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안을 받고 이 작품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사실 사명감을 가지고 이 작품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다만 한 여성이 인간으로 할머니들을 도와주는 게 좋았어요. 할머니들의 상황이 약자 중에 약자잖아요. 그런 분들이 정부의 도움 없이 이 여자 하나 믿고 재판까지 가는 모습에 마음이 움직였어요”

▲ 문정숙은 실존 인물이 있는데 그 분을 참고해서 캐릭터를 만들었나요?

“김문숙 할머니(한국정신대문제대책 부산협의회 회장)가 일본어를 굉장히 잘 하신대요. 처음엔 발음대로 한글로 써놓고 외우면 될 줄 알았는데 일본어에도 리듬이 있고 띄어쓰기가 있더라고요. 재판에선 더 어필해서 해야 되는 부분이 있으니 힘들었죠. 기록 사진도 보고 최대한 비슷하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결정적으로 부산 사투리가 있었죠. 정말 안 되겠어서 서울 사람으로 바꾸면 안 되나 생각까지 했어요. 지금까지 사투리 연기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부산 출신 배우들이 해놓은 게 많아서 쉽게 생각을 했는데 그게 함정이었어요”

▲ 사투리와 일본어 어떻게 준비를 했나요?

“석 달 정도 한 것 같아요. 촬영 중간에 잠깐 외국에 나갈 일이 있었는데 민규동 감독이 내가 잊어버릴까봐 사투리 선생님이랑 같이 가라고까지 하더라고요(웃음) 사투리 선생님의 이모, 친구, 어머니 등 여러 가지 버전으로 들으면서 공부했죠. 일어도 억지로 했죠. 원래 기억력이 안 좋아요. 근데 워낙 달달 외워서 이제 장기 기억으로 넘어갔어요. 지금도 외울 수 있어요. 정말 고통스러웠죠. 대사 한 줄을 일주일 동안 외웠어요. 계속 반복해야 내 꺼가 돼요. 좋은 경험이었어요”

▲ 이번에 캐릭터를 위해 살도 찌웠다고 들었어요.

“아이를 낳은 이후에 한 번도 몸무게가 바뀐 적이 없어요. 민규동 감독은 10kg 정도 찌길 원했는데 5kg정도 쪘을 때 더 이상 안 해도 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라서 마음가짐이 달랐나요?

“솔직히 마음이 아프니까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피하고 싶었어요. 근데 여성 소재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역이 많지 않았고 할머니들이 고군분투하고 문정숙이 그들을 서포트 하는 모습이 좋아서 시작했는데 몰랐던 역사를 알게 됐어요. 그동안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반성했어요. 그러기 위해선 진심을 다해서 연기를 해야 했고요. 그분들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걸 노력하고 용기를 냈는데 오히려 우리가 그분들에게 용기를 받고 나아갈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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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해숙 씨는 ‘허스토리’ 촬영 끝내고 우울증이 왔다고 하던데 중압감은 없었나요?

“언어적인 게 너무 힘들어서 잘 쓰던 한국말도 잊어버릴 정도였어요. 이걸 빨리 끝내길 학수고대했죠. 촬영 다 끝나고 울었어요. 이렇게 연기를 오래 했는데 촬영 끝나는 날 울었던 적은 처음이에요. 부담감이 나름 있었던 것 같아요. 기쁨의 눈물인지 슬픔의 눈물인지 모르겠더라고요. 분장실에 들어갔는데 막 눈물이 나왔어요”

▲ 결혼 이후에 연기 재미를 느꼈다고 말했던 걸 봤어요. 어떤 영향을 끼친 것 같나요?

“여자는 결혼하고 애를 낳으면서 달라지는 것 같아요. 인생을 알아야 연기가 나오지 않나 싶어요.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다가 생활 연기만 할 수 있나요? 물론 연기가 경험해보지 못한 걸 해볼 수 있게 하지만 인생의 경험은 어떤 것과 바꿀 수 없는 재산이라고 생각해요. 결혼하기 전엔 난 미완성된 풋내 나는 인간이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쭉 전진하고 배우며 연기적으로나 인간적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 결혼 후에 작품을 보는 눈이 달라졌나요?

“결혼 후, 이 나이에 작품, 캐릭터 선택의 폭이 그리 넓지 않아요. 더 예쁘고 젊은 배우에게 배역이 가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죠. 그 때 그 때 여건에 따라서 작품이 들어오는 것에 감사해요. 그 중에서 재미가 있으면 해요. 내가 할 만 한 가치가 있으면 재미가 없더라도,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구나’싶으면 해요. 그렇지 않으면 망설이게 돼요. 한 문장이라도 건질만하면 하죠. 그렇지 않으면 10년에 작품 하나밖에 못 할 걸요(웃음) 어릴 땐 피하고 싶고 놀고 싶었는데 점점 일이 소중하고 삶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돼요. 철이 든 거죠. 이번에 선생님들과 함께 하면서 또 배웠어요. 일에 대해선 신입처럼 떨려하고 감사하게 여기시더라고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요. 난 정신과 육체가 연결되어 있다고 믿어요. 그래서 일을 계속해야 건강해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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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 전에도, 결혼 후에도 크게 슬럼프가 없었던 것 같아요

“왜 없었겠어요. 있었죠. 근데 지나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그 땐 왜 그랬나 싶기도 하고 인생이 지나오면서 겪어야 할 통과의례인 것 같아요. 지금도 매일 좋기만 한 건 아니에요.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죠. 크고 작은 시련이 있고. 그래도 시련이 있었던 게 더 매력적인 것 같아요.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죠”

▲ ‘허스토리’가 배우 인생에 어떤 의미로 남을 것 같나요?

“연기자로 터닝포인트가 된 것만으로 좋아요. 내 한계를 실험해보는 느낌이 들 정도로 도전이었지만 힘든 만큼 배우로서 보람이 있어요. 후회 없이 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네요. 민규동 감독이 몰아붙이지 않았으면 이 정도로 했을까 싶기도 해요. 정말 애를 많이 쓰셨죠. 덕분에 좋은 작품을 만났고 모두 할머니를 위해서 하나가 된 것 같아요”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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