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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네;리뷰] '아일라' 거짓말같은 전쟁 실화 '국뽕' 없는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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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일라' 스틸컷 (사진=영화사 빅)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김동민 기자] 전장의 군인에게 있어 소중한 건 크게 두 가지다.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 그리고 그들이 살고 있는 조국. 군인은 죽지 않고 살아남아야만 고향으로 돌아가 그리웠던 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 천국을 마주하기 위해 전쟁이란 지옥을 견디는 셈이다. 많은 전쟁 영화들이 전쟁의 참혹함을 줄곧 전시하다가 끝내 살아 돌아가는 서사로 드라마를 만들어 내는 것도 그래서다.

영화 ‘아일라’의 주인공 슐레이만(이스마일 하지오글루)은 이와 정반대다. 터키군 부사관이었던 그는 상부의 지시로 한국전쟁에 파견된 뒤 한 한국인 소녀에게 마음을 준다. 폐허가 된 전장의 시체더미 속에 홀로 살아남은 다섯 살 남짓한 아이다. 부모를 잃고 홀로 남겨진 말 없는 꼬마에게 슐레이만은 ‘아일라’란 이름을 지어 준다. 부모와 연인을 터키에 남겨둔 슐레이만은 자신을 아빠처럼 따르는 아일라를 돌보며 아이와 떼어낼 수 없는 사이가 된다. 고국에 돌아갈 날이 가까워오지만 슐레이만은 아일라와 헤어지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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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일라' 스틸컷 (사진=영화사 빅)


영화는 참혹한 한국전쟁 한복판을 비현실적일 만큼 따뜻하게 그린다. 초반부 슐레이만 일행이 아일라를 구하고 유엔군에 본격적으로 합류하기까지는 일촉즉발의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일단 요새에 정착하고 전쟁이 지지부진해지면서 이들의 이야기는 터키군들의 ‘육아일기’로 변모한다. ‘삼촌’들의 훈련을 구경하고 거수경례를 흉내내고, 터키어를 배우는 아일라에게 전장은 즐거운 일이 이어지는 놀이터에 가깝다.

놀라운 지점은 임무를 마친 슐레이만의 선택이다. 오매불망 자신을 기다리는 아름다운 여자친구와 가족들을 터키에 두고, 그는 한국에 더 남기를 자청한다. 그에겐 피 한 방울 안 섞인 아일라의 보호자로서 그를 돌보는 것이야말로 사랑하는 이들을 만나는 것보다 중요하다. 부모와 연인은 슐레이만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보호자의 역할은 오래 가지 못한다. 군의 명령에 못 이겨 아일라를 두고 결국 터키로 돌아간 그. 연인은 이미 다른 남자와 약혼한 상태다. 슐레이만은 또 다른 여자를 만나 결혼하고, 그렇게 60년이 흐른다.

다소 작위적인 ‘아일라’의 이러한 전개가 남다른 무게를 갖는 건 실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 덕분이다. 실존인물인 슐레이만과 아일라는 헤어진 지 60년이 지난 뒤에야 한국에서 재회한다. 고작해야 1~2년 정도였을 두 사람의 관계는 반세기를 훌쩍 넘어 이어져 눈물바다를 이룬다. MBC 다큐멘터리를 통해 포착된 실제 두 사람의 재회가 영화 속 극 중 두 캐릭터의 재회와 교차되며 ‘사실’이 주는 감동을 극대화한다. 그렇게 ‘아일라’는 역사적 사건의 힘으로 서사를 끝맺는 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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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일라' 스틸컷 (사진=영화사 빅)


‘아일라’가 흔히 ‘국뽕’과 신파로 대변되는 전쟁영화들과 결을 달리하는 건 터키와 한국 간 합작 영화라는 점이 주효해 보인다. 이 영화의 서사는 터키와 한국 두 나라 중 어느 한 편에도 명확하게 서 있지 않다. 터키를 떠나 온 슐레이만은 고국으로 돌아가길 주저하고, 돌아간 뒤에도 한국의 이름 모를 소녀를 평생 잊지 못한다. 한국전쟁의 고통을 정면으로 겪은 아일라 역시 특별할 것 없이 고된 한국 현대사를 지나온 평범한 중년이 돼 있다. 이들은 딱히 애국자도 평화주의자도 아닌, 그저 서로 정을 나눈 오랜 친구에 가깝다. 알려지지도 않았던 조그만 나라 한국과, 이해관계를 떠나 그 나라를 돕겠다고 나선 터키의 관계처럼 말이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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