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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미스트리스’ 한지승 감독 “네 여자의 성장기, 나도 많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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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N '미스트리스'(극본 고정운, 김진욱)로 처음 장르물을 연출한 한지승 감독(사진=OCN)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손예지 기자] 영국 동명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OCN 오리지널 ‘미스트리스’가 지난 3일 막을 내렸다. 심야 시간 편성과 12부작이란 짧은 호흡 탓에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여성 중심 장르물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그 선두에 한지승 감독이 있다. SBS ‘연애시대’(2006)를 통해 ‘멜로 장인’으로 평가받았던 한 감독은 ‘미스트리스’를 통해 처음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를 연출했다.

도전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한가인·최희서·신현빈·구재이를 주연으로 내세운 ‘미스트리스’는 치정극에 가까웠던 원작과 달리 ‘네 여자의 비밀’이라는 매혹적인 소재는 살리되, 여기에 현대 사회 여성들의 고충과 보험 사기 등 현실적인 이야기를 버무려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게 했다. 또 긴장감을 자아내는 연출은 극의 스산한 분위기를 배가시켰다. 덕분에 원작과는 전혀 다른 웰메이드 드라마가 탄생했다는 평가다.

‘멜로의 대가’에서 ‘스릴러 대가’로 영역을 확장한 한 감독을 만나 ‘미스트리스’ 작업기를 들어봤다.

▲ 작품을 마친 소감이 궁금합니다

“시원섭섭한 게 아니라 섭섭시원해요(웃음) 아쉬운 게 조금 남은 상태인데, 스태프들과 연기자들의 체력이 다했을 때 끝이 나서 다행이기도 합니다”

▲ 어떤 점이 아쉽나요?

“이야기가 급하게 마무리된 느낌이 들어서요. 원래 16회로 준비했던 것을 12회로 줄이면서 뒷부분을 설명적으로 풀어낸 게 아쉽습니다. 이제 막 캐릭터들이 안정화되고 이야기가 굴러갈 때쯤이었는데… 하하”

▲ 회차가 줄어들면서 바뀐 내용이 있나요?

“원래는 사건 구성이 좀 더 탄탄했었어요. 그런데 이야기를 줄이다 보니 사건을 설명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생기더라고요. 미스터리 스릴러가 그런 장르가 아닌데 말이죠. 극 후반에 들어서며 답답하다는 시청자들의 반응을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고구마’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표현을 처음 들었어요(웃음) 연출자로서 죄송합니다. 그런 한편, 시청자들이 장르물에 대해 기대하는 지점들을 배우는 계기가 되었어요.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더 좋은 콘텐츠를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드라마가 방영하는 동안 시청자 반응을 살펴보나요?

“촬영 일정이 바쁘다 보니 직접 찾아보지는 못합니다. 대신 주위에서 많이들 이야기해줘요. 특히 채널에서 반응을 정리해 들려주면, 거기에 맞게 대응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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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감독은 '미스트리스'를 통해 배우고 느낀 점이 많다고 했다(사진=OCN)


▲ 처음으로 미스터리 장르를 연출하면서 느낀 점이 있습니까?

“스스로 놀랍기도 하고 즐기기도 한 작업이었습니다. 시청자들과 이런 장르로 소통해본 게 처음이어서요. ‘이런 반응이 오는구나’ ‘이런 효과가 있구나’ 많이 배웠고 느꼈죠. 나뿐만 아니라 작가들, 연기자들, 스태프들이 워낙 잘해줘서 만들어진 결과물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기회가 되면 더 도전해 보고 싶네요”

▲ 영국의 동명 드라마를 원작으로 미국에서도 리메이크됐던 작품인데, 비교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요?

“원작과는 다른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원작이 말하고 있는 현대 여성의 위기, 불안감은 당연히 갖고 오되 이를 어떻게 장르화할 것이냐 고민하면서 사건들을 만들게 됐죠. 어느 순간부터 리메이크라는 생각을 안 하게 됐습니다. 부담도 덜했고, 원작의 장점을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장르에 집중하자는 생각이었어요”

▲ ‘엄여인 사건’ 등 실제 우리 사회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드라마에 녹아 있었습니다

“실화를 중요하게 활용했죠. 실제 사건을 기준으로 만들었다고 볼 정도입니다. 비현실적인 이야기로는 공감대를 획득하는 게 어려우니까요. 현실성에 대한 확신이 우리에게는 굉장히 중요했거든요. 그런 한편 (조사하면서) ‘엄여인 사건’보다 더 극악한 보험 사기 사례가 많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 1~2회, 수위 높은 베드신으로 미성년자 관람 불가 등급을 받았는데요

“우리 드라마가 표방하는 장르가 ‘미스터리 관능 스릴러’였어요. 그렇지만 관능을 위한 관능은 소모적이라고 생각했죠. 천편일률적으로 표현되지 않기를 바랐어요. 그래서 장면마다 캐릭터들을 묻어나게 하려고 노력했죠. 이를테면 화영이의 베드신은 화려하고 표현이 풍부해요. 반면 목적을 갖고 관계하는 정원이는 현실적이고 담백하죠. 은수는 비밀스럽고 감성적인 분위기를 풍기고요. 그러나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있는 한편, 스스로 복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이러한 장면들이 정말 이 드라마에 필요했는지요”

▲ 스릴러를 넘어 공포감을 주는 장면들도 많았습니다

“하하. 특히 병원 계단에서 정심(이상희)이 내려다보는 장면이 무섭다고들 하시더라고요. 원래 콘티에는 없었어요. 그날 상희 씨가 일찍 현장에 나와서 한번 찍어본 거였는데 반응이 좋았죠. 정심이 등장하는 장면은 대부분 이상희 씨의 훌륭한 연기로 만들어졌어요. 또 김영대(오정세)가 나윤정(김호정)를 죽이는 방식이나 한상훈(이희준)을 뺀찌(플라이어)로 고문하는 것 등은 오정세 씨 아이디어였어요. 평소 현장에서 연기자들과 스태프들에게 많이 물어보는 편이에요. 예전에는 콘티에 맞춰 자로 재듯이 연출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재미가 없더라고요. 요즘은 기본 구성만 하고 현장에서 못 봤던 그림들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합니다”

▲ 극 후반부로 갈수록 배우들의 체력을 요구하는 장면이 많았는데,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요?

“정말 보여드리고 싶어요. 주연배우 네 명이 현장에 모이면 처음 얼마간은 아무도 그 근처에 못 가요(웃음) 촬영 전에 수다로 긴장을 풀거든요. 정말 친하게 지냈죠. 누구 하나 잘못하면 전체의 그림이 이상해진다는 걸 아니까, 서로 북돋고 디테일을 잡아주면서 순조롭게 촬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어요. 폐 콘도에서 살벌한 장면들을 촬영할 때도 실제로는 무섭다고 소리 지르면서 뛰어다니고…(웃음) 특히 (구)재이 씨가 겁이 매우 많아요. 그가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들 많이 웃었죠”

▲ 장세연 역의 한가인은 ‘엄마’를 연기해보지 않았던 배우인데, 캐스팅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엄마 역이었기 때문에 한가인 씨가 출연하겠다는 마음을 먹었고요. 나는 한가인 씨를 만나서 확신을 느꼈어요. 그의 의지가 상당했고, 아주 솔직했거든요. 연기에 대해 스스로 자신이 없었다고 털어놓더라고요.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 이 배우의 안에 대단히 많은 것들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미스트리스’를 통해 연기하는 데 새삼 재미를 느꼈다고 하더라고요. 나 역시 가인 씨가 이 드라마로 좋은 평가를 받게 돼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기를 대하는 자세나 표현하는 재능에 진정성이 있는 친구예요. 드라마가 끝날 즈음 말했어요. 앞으로 쉬지 말고 연기 계속해 달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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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트리스'의 주연배우 신현빈(왼쪽부터) 한가인 구재이 최희서(사진=OCN)


▲ 최희서는 6년 만에 드라마에 출연했다던데요

“몰랐어요(웃음) 지난해 희서 씨가 ‘충무로 블루칩’으로 뜨거웠잖아요. 함께 작업해보고 싶었죠. 또 한정원이라는 역에 누구보다 잘 맞겠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도 확신이 맞았고요”

▲ 시청자로서 김은수를 맡은 신현빈에 눈길이 많이 갔습니다. 이전까지는 주로 조연으로 활약했던 배우죠

“은수 역할에 고민이 많았어요. 섭외가 가장 늦게 결정된 캐릭터죠. 늘 그렇습니다만, 채널이나 제작사의 입장에서 인지도가 높은 배우들에 대한 니즈가 없지 않아요. 반면 연출자는 배우와 캐릭터가 얼마나 잘 맞느냐를 우선으로 생각하죠. 의견이 분분했어요. 현빈 씨는 희서 씨가 추천했어요. 직접 만나보니 느낌이 좋았고, 그 자리에서 출연을 결정했죠. 현빈 씨는 대단히 분석적이고 논리 정연하며, 한편으로는 긍정적인 배우예요. 예민한 연기자들은 현장에서 자신의 기준과 맞지 않는 것을 맞닥뜨렸을 때 부정적인 표현이 나오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면 분위기가 무겁고 거칠어지죠. ‘미스트리스’ 역시 배우들에게 갑작스러운 상황이 많은 현장이었음에도 현빈 씨가 긍정적인 방식으로 의견을 개진한 덕에 잘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 주연만큼 뜨거운 반응을 얻은 배우가 있습니다. 조선족 캐릭터를 연기한 이상희는 어땠나요

“함께 작업하고 싶었던 배우예요. 당연히 잘하리라 생각했는데,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이상희 씨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요. 정심 캐릭터가 중국 심양 사투리를 쓰는데, 경상도 사투리와 비슷하다더라고요. 실제로 상희 씨 말투에 경상도 사투리가 녹아 있어서 도움을 많이 받았죠(웃음)”

▲ 오정세·이희준 등 남자 배우들의 활약도 대단했습니다

“오정세 씨는 여태 극악무도한 캐릭터를 해본 적이 없다면서, 영대 역을 재미있어 했어요. 이희준 씨는 실제로 하게 지내는 배우라 그가 멜로를 잘 할 거라고 생각 못 했는데, 반응이 좋더라고요(웃음) 스스로 멜로에 욕심을 느끼는 친구예요. 대본 보면 닭살 돋는다면서도, 잘 해내거든요. 하하. 세연과 상훈의 로맨스는 이 드라마의 주된 내용이 아니었는데 가인 씨와 희준 씨의 케미스트리가 살려준 셈이에요. 다음번에는 희준 씨와 멜로하자고 했어요”

▲ 극 중 상훈이 죽지 않아 다행이라는 반응이 많았는데요(웃음)

“끝까지 고민했어요. 아직도 생각을 정리하는 중입니다. 원작이 제시하는 것은 상훈이라는 남성 조력자가 결국 죽고, 여성 인물들이 주체적으로 현실을 극복하는 것인데 과연 그렇게까지 이야기를 무겁게 마무리해서 시청자들에게 드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죠. 어차피 현실은 힘든데, 드라마만큼은 조금 비현실적이더라도 안도감이나 희망을 전달하는 게 더 의미 있겠다는 게 나의 가치관이거든요. 물론 엔딩을 맞기까지 과정이 조금 더 정교했다면 좋았겠지만, 최종회를 보고 시청자들이 안도하셨다면 다행입니다”

▲ 배우 이하나가 카메오로 등장하는 엔딩에서 시즌2를 기대하는 시청자가 많습니다

“하하. 아직 시즌2 계획은 없습니다만, 이에 대해 시청자들이 즐겁게 대화 나누시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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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감독은 '미스트리스'를 시작으로 남성 캐릭터에 국한했던 장르물의 폭이 넓어지기를 희망했다(사진=OCN)


▲ 장르물 특성상 마니아들의 열기는 뜨거웠지만, 시청률은 아쉬웠죠

“많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채널이나, 나를 믿고 응원해주신 분들께 죄송해요. 스릴러는 집중도와 몰입도가 중요한 장르이잖아요. 그런 데다 ‘미스트리스’는 주인공 네 명을 운용해야 하기 때문에 1회에서 시청자들을 설득하는 게 어려운 구조였죠. 그러나 작가님들은 그 어려운 작업을 공들여서 해냈습니다. 다만 연출 단계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느꼈고, 이 지점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고민하고 점검하려고 합니다”

▲ 전작 tvN ‘일리 있는 사랑’ 이후 4년 만의 드라마였는데, 공백을 길게 두는 이유가 있습니까?

“작업은 꾸준히 하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지는 않고요(웃음) 작품을 고르고 준비하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가더라고요. 차기작이 또 미스터리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합니다만, 장르에 따라 움직이진 않아요. 내가 생각했을 때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면, 차기작으로 찾아뵙고 싶네요”

▲ ‘미스트리스’는 연출자 한지승에게 어떤 작품으로 남을까요?

“단순히 여자들이 주인공인 장르물이 아니라 각각의 캐릭터들이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 재미와 의미를 줬다고 생각합니다. 나 역시 이 과정을 통해 배운 점이 많고요. 앞으로도 이 같은 작품들로 시청자나 관객들을 만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더 나아가서 ‘미스트리스’를 통해 남성 위주 이야기에 국한했던 장르물의 폭이 넓어지기를 바랍니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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