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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의 新바람] ②예술의 향기가 피어나는 곳, 문래창작촌

‘창작’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내는 일이다. 또 다른 정의를 내리자면 취향을 확고히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신을 표현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행위뿐만 아니라, 다른 창작물을 소비하며 개성을 찾아가는 일도 가치가 있다. 실제로 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 텀블벅과 곳곳에 위치한 창작촌 등에는 이들의 교류를 촉진하는 움직임으로 가득하다. 이전과 달라진 창작의 열기가 맞닿아 있는 곳은 어떤 모습일까?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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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래창작촌(사진=김희윤 기자)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김희윤 기자]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 문래동은 공업단지로 유명했다. 하지만 외환위기로 철강 산업이 침체되자 문래동 철공소는 힘을 잃어갔다. 이내 몇몇 철공소들만 제자리에 남고, 나머지는 수도권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러자 건물 임대료가 덩달아 하락했다.

자연스럽게 젊은 예술가들은 문래동으로 향했다. 홍대나 상수, 성수와 같은 동네는 이미 임대료가 높아져 터전을 잡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철가루 날리는 투박한 공장지대는 옛말이 됐다. 이제 문래동은 철공소와 예술촌이 조화를 이뤄 독특하고 멋스러운 창작촌으로 변신했다.

지금의 문래창작촌은 서울의 숨은 명소로 여겨진다. 이곳에는 사진인지 그림인지 구분이 안가는 벽화 예술부터 전시품, 직접 보고 체험해볼 수 있는 공방이 있다. 창작촌을 찾은 이들은 다양한 창작물을 관람하고 골목길의 정취를 느끼며 사진 촬영을 하기도 한다. 예술과 그 희열을 아는 자들의 열기가 공존하는 거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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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래창작촌에 위치한 조형물(사진=김희윤 기자)



■ 무심한 듯 낭만이 서린 거리

비좁은 골목. 문래창작촌 일대의 건물들은 전부 키가 작다. 두 평 남짓한 가게부터 젊은 예술인들의 허름한 공방에는 따뜻함이 서려있다. 거리에는 철공소가 즐비해 거친 느낌도 있지만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기계 소리는 정겹고 활력이 넘친다.

각각의 골목은 작은 미로처럼 얽혀있다. 그렇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외로 반듯하게 구획이 지어져 있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계획단지인 덕분이다. 길모퉁이를 돌면 무심하게 지나칠 수 있는 그러나 결코 평범하지 않은 거리가 펼쳐진다. 생활인들의 노곤한 발자취를 오래도록 껴안아주었을 길바닥은 행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꼬불꼬불한 길을 발길 닿는 대로 걸으면 어느새 눈앞에는 다양한 작품이 등장한다. 철 혹은 자투리 철근으로 만든 창작물들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본 따서 만든 동명 작품이 대표적이다. 그야말로 ‘창작의 거리’임을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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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래창작촌 곳곳에 그려진 그림들(사진=김희윤 기자)



■ 상상과 열정을 담금질하는 이들을 위해

영등포구는 문래창작촌을 서울의 대표 창작예술중심지로 발전시키기 위해 2008년부터 ‘문래공공예술 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 벽화그리기, 공공미술프로젝트, 아트페스티벌 등이 그 예다. 그 결과, 문래창작촌은 ‘예술의 거리’로서 개성이 짙어지고 있다.

서울문화재단이 문래동에 마련한 문래예술공장도 문래동이 창작자들의 장으로 색깔을 굳히는데 한몫한다. 문래예술공장은 영등포구의 공공지원사업과는 별개로, 창작촌 작가 대상 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 이 사업은 단체 프로젝트성 창작보다 개개인의 창작활동을 보장하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다만 일련의 공모와 심사는 거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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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래창작촌(사진=김희윤 기자)



이와 관련해 문래예술공장 담당자 선걸 씨는 “문래창작촌에는 300여 명의 작가들이 있다. 문화예술 관련 스튜디오나 공방 등 작업실은 100여 곳 정도 된다”면서 “이 많은 창작자와 공간을 전부 지원할 수는 없지만, 그 안에서 지역 활성화에 도움이 되거나 뛰어난 예술작품을 가려내 지원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선걸 씨는 “당장 창작의 큰 활성화를 목적으로 하기보다, 일정한 기여를 통해 예술인들이 최소한의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래동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창작자 지원 사업이 창작자와 소비자를 직접적으로 연결 지을 수는 없지만 이들이 활발한 교류를 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주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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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래창작촌에는 창작을 업으로 삼는 이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사진=김희윤 기자)



■ 예술과 생업 사이, 진짜 중요한 것은

사실 문래창작촌은 아름다운 벽화와 조형물만 있는 예술마을로만 볼 수 없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일터이자 생활공간이다. 즉 ‘창작’이라는 영역이 단순히 관광으로서 역할뿐 아니라, ‘생업’으로서도 여겨져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곳에는 각종 체험 프로그램이나 작품 만들기 같은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공방이 많다. 이런 강좌들은 창작자와 소비자가 교류를 하는 동시에 창작자가 또 다른 창작을 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된다. 그렇게 창작자와 소비자의 거리는 한 뼘 더 가까워진다. 낡은 공간에서 새로움을 향한 열망이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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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래창작촌 골목(사진=김희윤 기자)



다만 그 과정에서 경계해야 할 점은 각종 클래스를 제외한 지나친 상권 형성이다. 앞서 말했듯 문래창작촌에는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철공소 상인이나 작가들이 있다. 더군다나 우리는 자유로운 상상들이 떠다니던 동네들이 한순간에 ‘번화가’ 정도로 전락해버리는 것을 지켜봐왔다.

이와 관련해 문래동의 한 부동산 관계자는 “현재 문래동의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올랐다. 누군가의 작업공간이 사업공간으로 바뀌어갈수록 임대료가 올라가기 마련이다”라며 우려를 내비쳤다.

많은 이들이 창작을 하고 소통을 하기 위해 모였건만, 자칫하면 그 교류로 인해 본질을 잃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창작촌이 활성화되고 여러 지원을 받는다고 마냥 즐겁게 여길 수만은 없다. 창작촌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동네가 떠오르는 그리고 떠올라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노동자와 예술가, 그리고 소비자의 혼이 질서정연하게 맞닿는 지점에서야 비로소 지정한 창작촌이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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