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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슈다] 하일지의 발언, 견해인가 조롱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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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SBS)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문다영 기자] 소설가 하일지(본명 임종주)가 대학교 강의 중 한 발언이 도마 위에 올랐다. 그는 동덕여대 강의 도중 안희정 전 충남지사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했다는 비판에 휩싸였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15일 동덕여대 학내 커뮤니티에 하일지 교수를 규탄하는 글이 올라왔다.

이 게시물에 따르면, 하일지는 14일 문예창작과 1학년 전공필수 ‘소설이란 무엇인가’ 강의에서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을 자료로 수업하던 중 “‘동백꽃’은 처녀(‘점순’)가 순진한 총각을 성폭행한 내용”이라며 “얘(남자 주인공)도 미투해야겠네”라는 말을 꺼냈다. 그러면서 하일지는 안희정 성폭력 사건의 피해여성을 언급, 욕망이 있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의 발언에 한 학생이 강의실을 나가자 하일지는 “미투 운동에 대해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에 분노해서 나간 거겠지. 타인의 의견을 받아들이거나 들을 생각이 없는 사람은 작가가 아니라 사회운동가를 하는게 낫다”고 말했다는 것이 글쓴이의 설명이다. 이후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내 여성학 학회 등의 비판 성명이 대자보로 붙은 것으로 알려진다.

문예창작과 학생회는 성명을 통해 “임종주 교수는 안희정 전 지사 첫 번째 피해자를 대상으로, 사건 맥락과 불통하는 ‘여성의 성적 욕망’에 근거해 이른바 ‘꽃뱀’ 프레임으로 언어적 2차 가해를 저질렀다”며 “미투 운동의 의도를 비하하고 조롱했다. 공개적으로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하일지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소설가는 인간의 진실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므로 여성의 욕망에 관해서도 얘기하자는 취지로 말한 것”이라며 “불편을 느낀 학생은 학생대로 (성명 형식으로) ‘리포트’를 쓴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바깥까지 알려지며 논란이 되는 것은 의아하고 불쾌하다”고 밝혔다. 특히 ‘동백꽃’ 주인공 미투는 농담이었다면서 “교권의 문제 등을 고려했을 때, 학생들한테 사과할 생각은 없다”고 덧붙였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여론은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단지 여성의 욕망에 관해서 언급하고 싶었다는 하일지의 발언은 어째서 이토록 뜨거운 논란에 휩싸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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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SBS 방송화면)


누구나 어떤 사안에 대해 의견을 내놓을 수는 있다. 사회적 현안에 대한 개개인의 의견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하일지의 발언도 알려진 내용만을 두고 보자면 학생들이 확대해석했을 여지도 있다. 여성의 욕망이란 당연히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발언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안과 연결지어지는 것이라면 그에 대한 접근은 조심스러워야 했다. 더욱이 하일지는 교권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지만 사적인 자리가 아니었다. 강의실을 사적인 자리로 볼 수는 없다. 교수로서 학생들에게 이같은 발언을 할 때는 그것이 단지 여성의 욕망에 관한 것이었을지라도 자신의 발언에 대한 무게와 파장도 생각했어야 했다. 설사 본인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손 치더라도 받아들이는 다수가 어떻게 생각할지도 고려했다면 이런 논란을 불러 일으키지는 않았을 터다.

무엇보다 하일지의 발언과 시선이 문제되는 점은 미투 운동의 의의에 있다. 이번 하일지의 발언은 자칫 미투운동을 위축시키고 그 의미와 가치를 훼손시킬 수 있다는 데에 우려를 낳는다.

미투 운동이 터져나온 후 일각에서는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하고, 일부 이니셜 보도, 진실공방이 이어지는 것을 두고 미투 운동의 본질이 흐려졌다는 비판을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미투 운동이 여느 트렌드처럼 시류를 타고 갑자기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투 운동 이전에도 피해자들이 부당한 처우와 인간적 모멸감을 느끼는 가해자의 행위에 대한 폭로를 이어왔던 터다.

유시민 작가가 15일 JTBC ‘썰전’에서 한 말이 현 미투 운동의 시사점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유시민 작가는 방송에서 “‘미투운동’은 일종의 혁명”이라며 “보통 말하는 정치혁명이 아니고 양상이 혁명적인 양상이다. 그동안 쌓인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터진 건데, 그 안에서 음모를 꾸미는 사람도 생길 거고 그런 요소들이 올라타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시민 작가는 “그렇다고 해서 그만해야 한다 말할 수는 없다. 이건 계속 갈거다. 누가 기획한 게 아니고 터져 나온 거니까”라고 미투 운동의 본질을 언급했다.

한국성폭력삼담소 김신아 활동가도 본지와 인터뷰에서 “이전에도 용기 있는 폭로가 있어왔다. 여러 분야, 사회 곳곳에서 성폭력에 대한 ‘말하기’를 시도해 온 이들이 있었다”면서 “물방울이 모여 시내가 되고 강이 되듯 이같은 흐름들이 조금씩 모여져 현재의 상황을 만들었다. 서로가 말하는 흐름을 인식하고 주시해오며 ‘나도 말해야겠다’, ‘더 이상은 안된다’는 생각들을 하게 된 것 같다. 이 흐름에 어떠한 왜곡도 의심도 있어선 안될 것”이라고 당부한 바 있다.

이들의 말대로다. 현 시점의 미투 운동은 단순한 붐으로 치부할 수 없는 성격의 문제다. “제대로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 “괜히 말했다 불이익만 당할 것 같아서” 등 성범죄 실태조사 때마다 나오는 침묵의 이유들을 넘어서고자 하는 시도다. 그렇기에 하일지의 발언은 본인의 의도와 다르다 하더라도 미투운동을 여성의 욕망이란 프레임 안에 가두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었을 것이다.

일부 여론은 하일지의 발언 논란을 두고 문학적 담론을 정치적 투쟁으로 바꾼 것이라 비판하고 있다. 물론 자신의 견해를 말할 순 있다. ‘동백꽃’ 주인공이 느끼기에 여주인공의 대담한 행동이 불쾌했다면 그것은 그의 말처럼 여성의 욕망에 의한 성폭력에 해당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하일지는 그것을 미투와 비교했다. 지나가는 말투의 가벼운 발언이었을지 모르지만 무게는 가볍지 않았다. 너무도 유명한 문학작품, 아름다운 끝맺음으로 여겨지는 스토리를 미투와 연결시키면서 그는 미투 폭로자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고, 그 이후의 피해를 감안하면서까지 용기를 낸 것에 대한 조롱으로 비칠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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