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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연;뷰] 뮤지컬 ‘닥터 지바고’, 결혼이라는 담장 밖의 연애…그것은 축복일까? 비극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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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닥터 지바고' 속 연인 유리 지바고와 라라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박진희 기자] “사랑을 하려면 담 안에 갇히는 결혼이 아니라 담장 바깥의 찬바람 속에서 연애를 해야 한다. 사랑이란 누군가와 잘 지낸다는 것과는 다르다. 엄밀히 말하며 사랑이란, 어떤 사람도 심연 속에 자아를 내던지는 행위이고 동시에 이 사회의 윤리와 규칙, 체제와 통념, 그 전체와 맞서 겨루는 열정이고, 일상에 저항하는 힘인 것이다. 모든 사람이 다 사랑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사람은 절대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다”

여류 작가 전경린은 자신의 책 ‘나비’에서 사랑에 대해 이 같이 정의했다. 역설하자면 ‘결혼이라는 제도권 안에서 안정을 추구한 이들은 사랑을 못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뮤지컬 ‘닥터 지바고’ 또한 이 같은 자문을 남기는 작품이다. 195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유일한 장편 소설 ‘닥터 지바고’는 영화로 제작돼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바 있다.

소설이든, 영화든, 뮤지컬이든…‘닥터 지바고’에는 한결같이 ‘혁명의 순간에 피어난 운명 같은 사랑’이라는 수식이 따라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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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지바고'에서 유리 지바고의 아내 타샤의 넘버는 가슴 시리도록 애절하다



■ “결국 불륜 이야기 아니야?”

그렇다. 인터미션 중에 1부 관람을 마친 한 관객이 자신의 일행에게 이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을 엿들을 수 있었다. 정확한 표현 아닌가. 그것이 노벨 문학상 수상자의 작품이든, 영화로 제작돼 아카데미 5개 부문 상을 휩쓸었든, 브로드웨이 씨어터에서 뮤지컬의 막을 올렸든 간에 이야기는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을 사랑한 의사이자 시인 유리 지바고를 따라 간다.

유리 지바고는 명망 높은 집안의 딸 토냐와 결혼식 당일 라라와 마주친다. 동시에 운명 같은 사랑을 느낀다. 두 사람은 하늘이 맺어 놓은 짝 마냥 인생의 고난길 여기저기서 마주치며 사랑을 키워간다. 사랑이 커져 갈수록 죄책감 또한 커져가지만 결국 서로를 안고 ‘운명 같은 사랑’이라고 정의한다.

현대 사회의 화두이기도 한 ‘불륜’으로 비출 수도 이 이야기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작 반열에 오른 것은 ‘혁명’의 역동성과 ‘운명 같은 사랑’을 적절히 비유한 탓이다.

앞서 언급한 전경진 작가가 피력했듯이 사랑이란 ‘담장 바깥의 찬바람 속에서 하는 연애’에서 비로소 위대한 자신들만의 신화가 된다. 물론 착각이다. 그것이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따뜻하게 안착했을 때는 그것이 사랑이 아니었다는 착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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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지바고'에서 유리 지바고가 라라에게 첫 눈에 운명을 느꼈을 당시 넘버


■ 위대한 빛의 향연, ‘닥터 지바고’에 엄지를 들게 만든 이유


지난달 27일 개막한 뮤지컬 ‘닥터 지바고’는 조명이 완성도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끼치는 지 여실히 증명하는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론 강렬하게, 시종 신비하게 무대 위, 아래와 앞뒤를 오가는 조명은 그 색을 달리하며 전쟁과 혁명, 사랑을 역동적으로 표현해 낸다.

조명에 따라 빠르게 이동하는 무대 세팅 또한 몰입도를 높인 요소 중 하나다. 화려한 세트를 선택하기보다 간결하면서도 속도감을 준 무대 전환은 단연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단 한 번의 암전도 없이 풀어낸 1부의 전막 또한 관객을 극 안에 몰아놓고 감정의 소용돌이에 가둬버리는 장치가 됐다.

또 하나의 장치는 배우다. ‘닥터 지바고’에는 스타가 없다. 방송 등을 통해 이름을 알린 유명인이 없다는 의미다. 유리 지바고 역에 류정한 박은태, 라라 역에 조정은 전미도, 코마로프스티 역에 서영주 최민철, 토냐 역에 이정화 등은 여러 작품에서 걸출한 연기력을 선보인 배우들이다.

티켓판매율을 위해 이름만 알려진 배우를 끼워넣기 하는 억지 라인업이 없다는 점은 관객으로서 누릴 수 있는 호사 중 하나다. 뮤지컬계의 큰 별들의 호연을 연기 그 자체로 즐기는 것 또한 ‘닥터 지바고’가 선사하는 매력으로 꼽을 수 있다.

뮤지컬 ‘닥터 지바고’가 갖는 이 모든 매력을 차지하고, 그것이 ‘위대한 사랑’인지 ‘불륜 이야기’에 불과한 작품인지에 대한 판단은 관객 개개인의 몫이다.

조금 더 빨리 개막해 추운 겨울날 만났더라면 피부에 와 닿는 감동이 배가되었을 것 같은 아쉬움이 진하게 남은 뮤지컬 ‘닥터 지바고’는 오는 5월 7일까지 서울 잠실 샤롯데 씨어터에서 관객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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