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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다영의 읽다가] 옷장이 꽉 찼는데 입을 옷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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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문다영 기자] 매년 그러는 것 같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장 속 옷을 바꾸는데 이런 옷도 있었나 싶다. ‘내년에 입지 뭐’ 하고 지나간 계절의 옷상자에 넣어두곤 다가온 계절의 옷을 옷장에 차곡차곡 개어 넣는다. ‘그래 이 옷이 있었지’ ‘맞네. 작년에 참 잘 입었는데’ 하며 새로운 계절을 맞이한다. 올해 살 옷은 그닥 없을 것 같다.

어라, 그런데 옷장문을 열 때마다 입을 옷이 없다. 여자들이 흔히 옷장에 옷을 가득 넣어두고도 입을 옷이 없다고 하지 않나. 마찬가지다. 옷장에 옷은 꽉꽉 들어차 있는데 정작 ‘입을만한’ 옷은 없다. 지난해 이 계절에 대체 뭘 입고 살았나 싶을 정도다.

싹 가져다 버릴까? 생각해보지만 역시 그건 아깝다. 이 옷은 이럴 때는 입을 수 있을 것 같고, 저 옷은 그런 상황에서 입으면 좋을 것 같다. 버리는 건 아니다 싶어 다시 옷장엔 입지 않는 옷들이 차고, 아침마다 옷장에서 서성대는 날도 이어진다. 그렇다고 다른 계절의 옷들은 꼭 마음에 들고, 입는 옷들만 상자에 담겨 있는가, 아니다. 몇 년 째 벽장 속에서 예쁘게 개어져 있기만 한 옷들이 대다수다.

아… 나는 왜 버리지 못하는가. 비단 옷장만의 사정은 아니다. 집안 구석구석을 보면 물건이 넘쳐난다. 세일해서 가득 사둔 수세미, ‘싸니까’ 쟁여둔 인스턴트 식품들. 전쟁이 나도 1년은 거뜬히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냉장고. 입버릇처럼 “한 번 싹 정리해야지, 다 먹고 버려야지” 하지만 정작 뭘 버리고 뭘 취해야 할지 혼란만 더한다. 미니멀 라이프, 뭐 이렇게 어렵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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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트렁크 하나면 충분해' 책표지)


일본 풍선아트회사를 운영하는 에리사는 이 점에 주목해 어떻게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는 지에 대한 방법론을 이야기한다. 특히 저자는 버리는 것보다 ‘무엇을 남길지’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트렁크 하나면 충분해’는 철저히 방법에 충실하다. 1년에 필요한 신발이 몇 켤레인지는 직업과 주로 가는 장소, 실용성에 맞춰 결정한다. 옷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가지고 있는 옷 리스트를 만들고, 자신의 체형에 가장 어울리는 옷들이 무엇인지 체크한다. 버린 옷에 대한 리스트도 자주 봐야 한다. 그래야 ‘어울릴거야’ ‘살빼면 되지’ 로부터 시작되는 충동구매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집안도 그렇다. 저자는 욕실에 늘어져 있던 용품들을 줄이는 대신 자신에게 맞는 샴푸와 세면용품을 꼼꼼히 골랐다. 갖가지 헤어 용품과 스킨케어 용품들을 줄이기 위해 비타민 C가 함께 나오는 샤워기를 달았다. 저자는 1년 이내에 사용한 적 있는지 추억 때문에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있는지를 물으면서 하나를 사면 둘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저자가 말하는 미니멀라이프란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들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것이다. 그래야 불필요한 지출과 그로 인해 수반되는 물건의 과잉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1만원짜리 청바지 5개를 사 1년 입는 것보다 20만원짜리 청바지를 10년 입는 게 더 자신을 빛내는 길이라는 주장이다. 효과적이긴 하다. 저자는 꼭 필요한 트렌치코트와 짚업 파카를 옷장에 넣고 여러 아우터를 버렸다. 가볍게 트렌치코트, 추울 땐 그 안에 카디건을 받쳐 입는 방식으로 스타일을 살리고 옷장을 비워내는 데 성공했다.

특히 저자는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면서 자신에게 소중한 것만 남았다고 강조한다. 가장 소중한 것들과 쓸모 있는 물품들이 물건이 넘쳐나던 때보다 더 행복한 일상을 살아가게 해준다는 것이다. 이 책이 말하는 모든 방법들을 곧이곧대로 따를 필요는 없겠지만 저자가 ‘미니멀리스트가 된 후’ 자신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말하는 책의 ‘5장’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미니멀 라이프를 살기 시작하면서 가치를 느끼는 일이 늘어나고 ‘선택하는 힘’이 늘어난다고 강점을 말한다. 특히 선택하는 힘이 길러지면서 기회를 놓치는 일이 적어지고 행복을 미루지 않게 되는 자신을 발견한다고. 일상의 주변을 정리하면 삶에 어떤 변화가 오는지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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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촬영분)


아쉬운 점도 있다. 책은 중요한 부분을 너무 뒤로 미뤘다. 초반 책을 읽다 보면 이것이 미니멀라이프를 살아가는 사람의 책인지 스타일리스트의 책인지 헷갈리게 한다. 초반에 ‘최소한의 패션과 미용’을 배치한 탓이다. 물론 저자가 말하는 것은 ‘줄이는 방법’이다. 출판사 역시 손쉽게, 가장 먼저 해볼 수 있는 방법을 앞에 내세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옷과 가방, 미용 용품으로 80 페이지가 이어지는 데다 일부 지점에선 물건은 줄이되 비용은 훨씬 많이 나간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이 때문에 남성 독자들이나 일부 여성 독자들의 반감을 살 여지가 있다. 특히 여성 저자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패션과 미용 부분은 너무 여성적이다. 오히려 휴대전화와 서류, 주방 관리, 청소를 위한 버림 등 저자가 알려주는 ‘진짜’ 실용적 팁들을 전면에 배치했다면 이 책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을 것이다.

이 책의 진가는 앞서 말했듯 미니멀 라이프로 인해 시작되는 인생의 변화다. 단순히 주변이 정리되고 삶이 단순해지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시작이 한 사람의 자신감과 안목, 자유까지 보장한다는 부분은 주목해야만 한다. 다만 저자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하면 숨막힐 수 있다. 천천히,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시작해봄은 어떨까. 책은 가볍고 얇다. 중간중간 사진이 많기 때문에 적은 시간 내에 읽을 수 있다. 아니다 싶은 부분은 건너뛰고 꼭 필요한 부분을 체크해가며 읽을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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