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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다영의 읽다가] 청소년 강력범죄, 가해자 부모를 비난하는 건 가장 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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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반비)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문다영 기자] 어느 날 새벽, 사랑하는 둘째 아들은 아침마다 말해주던 스케줄도 말해주지 않은 채 자신을 부르는 엄마의 얼굴도 바라보지 않은 채 문 뒤로 “안녕”이라는 말을 남기고 등교한다. 그 아들은 친구와 함께 소풍가듯 자신의 차에 짐을 가득 싣고 학교로 향한다. 아들과 친구는 학교에 학생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식당, 정오에 터지도록 시간을 맞춘 폭탄을 설치한다.

폭탄이 예상과 달리 터지지 않자 둘은 미리 사둔 총을 들고 학우들을 향해 쏘기 시작했다. 무차별 난사. 도서관에서 마주친 학생들은 물론이고 다른 학생들을 보호하려는 교사에게까지 총을 쏴대던 그들은 “왜 애들을 죽이냐”는 학우의 말에 “그냥”이라 답한다. 부상 당한 학우를 확인사살한 무자비한 두 학생은 “날 죽일 거냐” 묻는 친구에게 총구를 겨누는 대신 “가라”고 선심을 쓰기도 한다. 그렇게 학교를 공포로 몰아넣고 열 세명의 학생을 죽이고 스무 명이 넘는 부상자를 남긴 두 친구는 약속이나 한 듯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자신들이 죽인 친구들과 교사를 뒤로 하고 스러진 그들을 받친 것 양탄자. 상황이 종료된 후 두 학생의 차에서는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들었을 대량의 사제폭탄이 터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만약 식당과 차에 설치한 폭탄이 터졌다면 희생자는 수 백명으로 늘었을 터다. 그들을 저지하려는 경찰의 손에 죽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을 마감한 두 학생을 두고 세상 사람들은 당연한 호칭을 썼다. 악마, 악마의 자식.

악마를 기른 부모에게도 당연한 비난이 쏟아졌다. 대체 어떻게 했기에 그런 사상 초유의 악마를 키워냈느냐고. 자식을 ‘그렇게’ 길러낸 부모에게 가장 큰 책임이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 총기난사사건의 가장 충격적 사건이라 불리는 콜럼바인 고등학교 가해자 부모는 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참극을 빚어낸 악마보다 더한 악마의 모습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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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책표지)


그러나 전세계를 뜨악하게 한 살인마의 엄마는 자식의 이면을 몰랐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라는 책의 저자 수 클리볼드는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가해자 두 명 중 한명인 딜런의 어머니였다. 어느 날 갑자기 알게 된 악마의 얼굴. 그러나 동시에 그 얼굴은 자신이 사랑으로 키워낸 아들의 것이기도 했다. 수 클리볼드는 책을 통해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고 변명을 하지는 않는다. 그저 가해자의 부모가 겪는 감정, 뒤늦은 후회에 대해 전하며 부디 세상의 모든 부모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당부한다. 주변인들에게까지 잘 자란 아들, 착한 아들로 평가받다 어느 순간 돌변해 학살자의 면모를 드러냈고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자살해버린 아들. 그에 대한 모든 책임을 떠안게 된 그는 아들이 죽었다는 것, 그것이 자살이었다는 것, 많은 이들의 삶을 빼앗았다는 것을 한 번에 받아들이지 못한다. 수 클리볼드는 많은 이들을 죽인 가해자의 엄마가 느끼는 감정들을 그 어떤 소설이나 영화보다도 극적이고 절절하게 전한다. 드라마틱하게 썼다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했던 50대 초반의 여자가 인생을 통째로 들어내는 사건과 맞닥뜨리고 세상에 버티며 느끼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얼마나 걷잡을 수 없는 것인지가 생살을 드러내듯 적나라하게 표출된다. 죽을 때까지 없어지지 않을 고통과 족쇄는 아들이 선사한 것이었지만 수 클리볼드는 오히려 그렇기에 자신의 아들이 어릴 때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함께 한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했던 것인지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그렇게 2년이 지나서야 수 클리볼드는 아들의 고통과 마주한다. 경찰에서 뒤늦게 아들의 쪽지와 일기를 전해준 탓도 있었지만 비난의 세상에서 두 발로 딛고 서 있기도 힘들었기에 아들의 고통은 뒤늦게야 살펴볼 여력이 생긴 것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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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반비)


아들의 우울증을 몰랐던 어머니의 회한은 묵직한 울림을 전한다. 자신의 일상을 살아나가고 어머니를 위로하던 아들은 사실 온몸으로 자신의 위기를 말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남편의 건강, 집안의 재정문제에 신경 쓰느라 생전 처음 문제를 일으킨 아들이 “잘 해나가겠다”는 말을 믿고 넘긴다. 아들과 조금 멀어져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우선순위의 걱정은 아니었다. 아들은 학살자가 되기 전날까지도 성실하게 일상을 살아나가는 자식이었다. 미래를 준비하기까지 했다. 수 클리볼드는 실상은 하루를 겨우겨우 버텨내면서도 부모가 알지 못하게 자신을 감추는 아이들도 있다고 지적한다. 물론 그것이 가해자 부모의 변명이 될 수는 없겠지만 가해자 부모가 자기 자식의 이면에 가장 충격받은 또 한명의 피해자일 수 있다는 점을 직시하게 한다.

아들의 아픔, 행적을 되짚으며 수는 세상 모든 흉악범의 부모가 무조건 자식의 문제를 알고도 방치한 방관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세상의 선입견에 대한 변명은 아니다. 세상의 흉악범을 보며 자신마저 ‘어떻게 키웠길래’라는 생각을 했지만 정말로 부모가 아이의 전부를 알 수 없는 순간이 있다고, 그렇기에 아이의 작은 변화마저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한다. 가해자 부모로서 핑계가 아니라 아들의 사건을 계기로 뇌건강 분야 전문가로 거듭난 저자가 당부의 마음으로 쓴 책인 셈이다.

책은 너무 아프다. 자식이 있는 부모 독자라면 ‘내 아이가 이런 일을 벌였다면’이란 감정 이입 때문에 읽는 내내 괴로울 수밖에 없다. 남들에겐 최악의 악마로 불리지만 죽은 아들을 바로 만날 수도 없는 상황의 수가 가장 하고 싶었던 건 끝없는 의문부호 속에서도 그저 아들을 꼭 안아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부모로서 공감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그와 동시에 책을 읽으면서 분명 어떤 지점이 있을 것이라고, 내 아이는 이 아이와 다를 것이라 확신하고 안심할 수 있는 허점을 찾고 싶어 안달이 나기도 한다. 그런 이들에게 수 클리볼드는 차분히 말한다. 아이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자식을 아는 게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 다만 아이를 잘 지켜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의심이 아니라 모든 일을 제쳐놓고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볼 집중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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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반비)


다만 수 역시 한 아이의 엄마이기에 아들의 마음과 뇌가 아팠고 그렇기에 벌어진 일이라는 거듭된 해명의 욕심을 지우지는 못한다. 자식을 감싸주고 싶은 그 마음은 어쩔 수 없이 튀어나오며 그의 아들 딜런과 함께 일을 벌인 에릭의 사이코패스적 면모를 강조할 때 더욱 잘 드러난다. 가해자의 부모로서 자신의 찢어진 심장까지 드러내면서 쓴 책이지만 어쩔 수 없게도 에릭을 방패삼아 아들을 두둔하는 엄마의 마음을 감출 수는 없었다. 그건 어쩌면 또다른 가해자 부모인 에릭의 부모를 상처입히는 것일 수 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결국 수 클리볼드는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학살자의 엄마라는 것이다. 수의 남편이었던 톰(결국 두 사람은 이혼했다)이 묘비명에 쓰겠다던 말이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살아 나가야 하는 가해자 부모의 아픔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제 끝이라니 감사합니다”
가볍게 읽을 수는 없는 책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아서 키울 예정이거나 키워나가는 부모라면 한번쯤은 읽을 필요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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