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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View] 김보통 작가, 아 글쎄 보통 아니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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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강동엽 기자)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문다영 기자] 여기 영 보통 사람 같지 않은 인물이 있다. 만화가라는데 이전엔 대기업에 다녔다. 취업준비생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곳을 두 곳이나 거치고도 ‘죽을 것 같아서’ 대기업에서 뛰쳐나온 그는 디저트를 굽다 펜을 들었고, 어릴 적 담임교사의 예언 같았던 말처럼 만화가가 됐다. ‘살아가기 위해서’ 안정된 울타리를 벗어난 그는 인형탈을 쓰고 대중 앞에 선다. 인형탈 안의 그는 참 보통 사람이다. 지극히 보통 사람이며, 다른 이들에게도 보통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김보통’이라는 이름을 쓴다는 만화가 김보통을 만났다.

단정한 회사원, 혹은 인기 많을 것 같은 교수처럼 보이는 김보통은 사회라는 틀을 탈출한 에세이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로 자신의 필력을 과시했다. 깊이 있는 스토리로 이미 다양한 상을 휩쓸었고, 영화화되는 작품도 있지만 이렇게 글을 잘 쓸 줄은 몰랐다. 웬만한 소설가보다 나은 필력. 역시 보통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 김보통은 손사래를 치며 ‘보통’을 강조한다.

“굉장히 보통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인형탈을 쓰는 것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 사람들 중 하나가 김보통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입니다. 내가 바라는 모습 자체가 만화로 엄청난 부를 얻겠다거나, 인생작을 만들겠다는 것보다는 만화를 그리면서도 먹고 살 수 있고, 직장 개념으로 일할 수 있다는 생각이거든요. 늘 보통을 지향합니다. 이후의 삶 역시 혹 돈을 많이 벌게 되더라도 그 돈을 보통보다 모자란 사람을 위해 환원하거나 투자함으로써 보다 많은 이들이 보통으로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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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강동엽 기자)


■ ‘제발 암이길’ 기도한 직장인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는 솔직해도 너무 솔직하다. 이렇게 자신의 모든 걸 까발려도 되나 싶을 정도다. 어린 시절, 단칸방에서 네 식구가 살았고 아버지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어려운 생활을 했는지부터 자신의 고뇌와 ‘찌질함’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렇기에 혹시 인형탈을 쓰고 그간 인터뷰에 나섰던 이유들이 이런 ‘솔직함’을 위한 전략은 아니었을까.

“사실 별 생각은 없었어요. 처음 인터뷰 제안이 들어왔을 때 사진 찍는데 얼굴이 나가면 오히려 관심이 없을 것 같더라고요. 너무 평범하게 생겼잖아요. 내 캐릭터를 이용하면 좋겠다 생각했죠. 그게 이어지다 보니 지금에 와서는 벗기가 애매한 상황이지만 이번 에세이를 쓰면서 ‘다행이다’ 생각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회사 다닐 때 안 좋은 기억을 줬던 상사들, 함께 했던 동료들 중 상처받는 이들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절 괴롭혔던 것에 대해 회개하지 않을 이들도 있지만 강압적 요청으로 나를 괴롭혔던 것일 수 있기에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수많은 이들이 바라마지 않고, 그 문턱을 넘은 이들 중에도 회사를 잘 다니는 사람도 있는데 그는 왜 못 견뎠던 걸까. 특출난 괴롭힘이 있었던 건 아니다. 회사를 중심으로 하루가 지나갔고, 가족과의 삶은 꿈도 꾸기 힘든 잦은 회식이 그를 옥죄었다. 대부분의 회사원들이 겪는 일들이지만 ‘어쩔 수 없지’ 체념하거나 이미 체화된 이들과 달리 김보통은 ‘저녁이 없는 삶’, ‘가족과 함께 할 수 없는 삶’이 자신을 무너뜨렸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아직 회사를 다니고 있다면 정말 죽었을 거라 말한다.

김보통은 “무거운 대답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난 죽었을 것”이라며 “힘들다가 아니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단적으로 건강검진에서 갑상선, 간에서 종양이 발견됐는데 정밀 검사를 앞두고 ‘제발 암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아무리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해도 모두가 저를 위한다고 말렸는데 만약 암에 걸린다면 그땐 안 막을 것 아닙니까. 그 정도로 정상적 사고가 불가능했습니다. 지금도 크고 작은 시련들이 있지만 두렵지 않아요. 어쨌든 회사를 계속 다녔으면 죽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절박했던 심정을 토로했다. 오죽하면 가장 싫어하는 말도 “술을 못 마시면 사회생활을 못한다”는 말이다. 그는 “우리 사회가 그 문장으로 좀 먹고 있어요. 말도 안되는 소리에요. 그 말로 따지면 알콜 중독자들은 사회 상류계층들이죠. 회사 생활을 하며 술과 인성을 연관 짓는 걸 납득할 수 없어요.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라 말하고 싶습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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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강동엽 기자)


■ 굳이 ‘불행하지 않다’ 말하는 건

그 시간들에서 벗어났기에 그는 ‘불행하지 않다’고 말한다. 보편적으론 “지금 충분히 행복합니다”라는 말이 나와야 할 것 같은데 불행하지 않단다. 어쩌면 그건 일말의 후회 속에 읊조리는 자위일 수 있지 않을까 묻자 그는 세상이 정한 행복을 논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 답한다.

“불행하지 않다고 하면서 행복하지 않다고 하는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에요. 진짜 불행하지 않은 것 뿐입니다.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벗어났죠. 고통에 불행하지 않게만 해달라는 거예요.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는 건 이 사회에서 말하는 행복이란 것이 기준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에요. 아파트가 어디인지, 차는 뭘 타는지, 수입은 얼마나 되는 지…. 등급 나눠져 있어서 남들이 기준으로 삼은 행복에 빗대고 싶지가 않아요. 지금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대기업에 다니는 건 본인 사생활을 포기하는 건 물론 가족 구성원으로서 역할도 포기한다는 뜻입니다. 아들로서 아버지로서 가족으로서 역할도 포기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게 회사원이에요. 그게 굉장히 비정상적인 일이죠. 그렇게 회사에 헌신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건 잘못됐어요.”

어쩌면 누군가는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를 읽고 퇴직을 결정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 역시 힘들었던 지난날들이 오버랩되며 절절한 공감을 했다. 만약 그 때의 내가 이 책을 읽었다면 나 역시도 사는 게 먼저란 생각에 직장을 뛰쳐나왔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그러자 김보통은 “제발 안 그랬으면 좋겠다”고 난처한 웃음을 보였다.

“이 책을 쓰면서 조심하려 했던 게 이 책을 읽고 그만둬야겠다는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것이었어요.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 경험을 담은 책이고, 바뀐 내 삶도 개인적 우연에 의한 것이지 반드시 퇴사 해야만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고 호도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만약 회사를 다니며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면 죽기보다 그만두는 게 맞겠지요. 벗어나겠다는 용기가 생겼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만두고 나서 닥치는 수많은 고난은 감당하셔야 한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요. ‘아, 나도 회사를 그만두면 만화가 될거야’는 안일한 생각입니다. 책에서 누누이 밝히지만 내가 이후에 뭘 할 것인가 하는 계획이 어느 순간 ‘빡’ 오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아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다만 죽고 싶지 않았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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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강동엽 기자)


■ 김보통이란 사람, 그리고 아버지

그가 회사에 들어간 것도, 나온 것도 그 중심엔 아버지가 있다. 어렵게 세상과 싸우며 가족을 지켜야 했던 아버지는 김보통에게 대기업에 들어가라 말했다. 소원대로 대기업에 들어간 김보통은 아버지가 암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고야 대기업을 뛰쳐나왔다. 오늘 내일 하는 아버지의 병실 대신 회식 자리에서 눈물을 쏟아야 했던 일화는 가슴이 아릴 정도다. 아버지가 중심이었던 그의 이전 삶은 언뜻 보면 아버지의 말에 휘둘리고 아버지의 뜻에 항변하지 못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오히려 반대다. 김보통은 이토록 낙천적일 수 있는 이유가 모두 아버지 덕이라 강조했다.

김보통은 “최규석 작가님이 ‘가난한데 밝게 자랐다. 어디로 튀어나가기 마련인데 그렇지 않다’는 말을 한 적 있어요”라며 “그 얘길 듣고 이유를 생각해보니 부모님 덕이었습니다. 방앗간을 하신 부모님 덕에 365일 24시간 같이 붙어 생활했어요. 그 기간 동안 못 산다는 걸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안정감 있고 충만했어요. 교육학에서 부모와 유대감이 깊은 아이일수록 커서 난관을 잘 극복한다잖아요. 부모님과 함께 한 삶이 참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라고 설명했다.

아버지는 김보통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뜬금없이 운 좋게 찾아온 만화가의 기회에서 겁 없이 암환자의 이야기를 다룬 ‘아만자’를 내놨을지 모른다. 김보통은 늘 진행중인 만화에 가장 큰 애착이 있다며 “아직까지도 ‘아만자’ 얘기가 나오는 거 보면 아직도 뛰어넘지 못한 것 같네요. 더 나은 만화를 그리고 싶어요”라면서도 “아버지는 장애물이자 나란 존재를 지지해준 지지대이기도 합니다”라고 애정을 드러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독자들도 생을 달리 한 이들이다. ‘아만자’ 작품의 특성상 실제 암환자들이 수많은 독자들 중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 가장 최근, 그를 가슴 아프게 한 독자도 세상을 떠났다.

“독자 분 중 한 분이 죽기 직전 날 보고 싶다고, 호스피스 간호사를 통해 연락을 해왔어요. 못 갔어요. 망설였습니다. 죽어가는 사람의 마지막을 잠깐이라도 본다는 게 굉장한 마음의 부담이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죠. 이틀인가 삼일을 고민하다 ‘가야겠다’ 생각을 했는데 간호사에게 연락이 왔어요. 돌아가셨다더라고요. 최근 일 중 가장 후회됩니다. 뒤늦게나마 편지를 써드렸는데 그분 49제 때 가족분들이 함께 읽었다더라고요. 밝고 즐거운 만화를 그렸다면 이런 일 없었을 건데…라는 생각을 많이 했죠. ‘아만자’로 인해 죽어가는 분들을 목격합니다. 그 분들이 모두 기억에 남아요.”

■ “내가 마지노선이 될 수 있다면…”

힘든 시간을 보냈고, 죽고 싶지 않고 불행하지 않은 삶을 사는 요즘이라서일까. 김보통은 당연히 정당한 대우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가 만화계의 혁명적 인물이 됐다. 당연히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로 여겨졌던 어시스트들에게 정규직 채용, 4대 보험과 퇴직금 제공, 명절 인센티브와 판권 판매 시 인센티브 제공을 약속했다. 그가 특별히 억울한 일을 당한 것도 아니다. 김보통은 만화 플랫폼이 쏟아질 때 수요 부족으로 운 좋게 곧바로 만화가가 됐다고 말한다. 다만 첫 만화를 그릴 때 함께 했던 어시스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데뷔하고 첫 작품하는 동안 어시스트 고용했는데 굉장히 불합리한 조건이었어요. 계약도 아닌 구두 합의였죠. 당시 지극히 일반적이었어요. 인터넷 카페를 통해 구인했고, 원고 주면 정해진 일만 하는 정도였죠. 제 고료도 낮았기에 그 이상의 돈을 줄 수 없었어요. 어시를 하느니 일용직이 더 나았던 상황일 정도? 별 문제의식 없었는데 상 받고 돈 벌고 만화를 그리게 되면서 내 만화도 이렇게 팔리는데 같이 일하는 어시들은 노동자로 인정 못 받는 게 불합리하다 생각했어요. 죄책감과 회의감이 들었다. 그래서 작업실을 만들며 정규직, 월급, 상여금 다 주고 퇴직금까지 주자 생각했어요. 불안하긴 하지만 아직 큰 무리없이 돌아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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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강동엽 기자)


김보통 작업실 어시스트는 이력서도 없이 포트폴리오만 받는다. 성별, 나이, 학교는 중요치 않다. 그렇게 채용된 어시스트는 12시 출근 6시 퇴근이다. 노동청에서 규정하는 정규직에 해당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김보통은 정규직에 맞는 대우를 한다. 인터뷰 도중 만난 어시스트들이 찌들어있지 않아 보이는 건 그 때문이었나 싶다. 하지만 아무래도 업계의 비난을 한몸에 받을 것 같은 선구자적 생각. 역시, 건너 건너 욕을 듣고 있단다. 하지만 반대로 업계의 변화도 몸소 체험 중이다.

“강조하고 싶은 건 어시들에게 정당한 급여 못 주는 이유는 비도덕적이기 때문이 아니고 고료가 낮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저는 다른 만화가를 비난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느 일정 수준에 대한 마지노선이 되고 싶어요. 대형 포털에 연재 한번 한 적 없는 김보통보다 잘 나간다면 어시스트들에게 이 정도 이상은 해줘라 하는 최저 마지노선이 되고 싶은 거예요. 적은 고료를 받는 만화가를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만화가 한 명이 부자가 됐다면 어시스트도 부자는 못 되더라도 살아갈 수는 있어야죠. 요즘 어시스트들에게 쪽지가 오는 경우가 있어요. ‘생전 없던 휴가를 줍니다’ ‘상여금을 준다고 합니다’라는 등 자기 만화가가 눈치를 본다고요. 뿌듯하죠. 더 뿌듯하려면 만화가 최저 급여 자체가 올라갔으면 합니다. 법도 정비돼야 하고, 계약서, 플랫폼 등 문제가 산재해 있기에 길게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보통의 요즘은 참 바쁘다. 최근까지 한겨레를 통해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해 조명했던 연재작은 한 달 뒤면 책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탈영병 잡는 군인이라는 소재에 젊은이들이 소망하는 군대의 모습을 우회적으로 제시한 ‘DP 개의 날’은 영화화를 준비 중이다. 이와 관련, 김보통은 기본적으로 재밌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면서 엑소 세훈이나 동방신기 유노윤호를 가상 캐스팅 인물로 거론했다. 김보통은 “‘DP 개의 날’ 안준호를 그리면서 유노윤호를 참고했어요”라며 “20대 초반 젊은이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무리하게 나이든 전문 배우를 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라 말했다.

언젠가는 꼭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고 싶다는 김보통. 독점 기업을 싫어하고 사회의 부조리함에 치를 떠는 그에게 독자에게 전할 마지막 인사를 부탁했더니 익살스러운 답이 날아왔다. “대학교 때 헤럴드에서 인턴기자를 했어요. 아무 연이 없지만 오늘이 오게 돼 감회가 새롭네요. 혹시 인턴 지원하시려는 분들 있다면 좋은 경험될 수 있을 거예요. 혹시 아나요? 저처럼 될지.(웃음)” 역시, 김보통은 보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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