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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콘텐츠 속 여혐] ①우리는 ‘예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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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은의 ‘아침이슬’이 불순하다는 이유로 부르지 못한 시절이 있었다.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었던 시대를 이겨내고 현재 대한민국에서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권리가 됐다. 하지만 최근 전세계적으로 페미니즘이 확산되면서 창작자들의 자유와 여성들의 인권이 부딪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여성 혐오적인 표현과 방식을 구분하는 시선이 콘텐츠에 주는 영향과 달라진 인식이 불러올 사회적 변화에 대해 짚어봤다.-편집자주-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남우정 기자] ‘여배우’라는 단어의 문제가 뭔지 인식하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젠 여성 혐오적 시선에서 온 단어라는 걸 받아들이고 있다. 대중들의 시선은 날카로워졌고 콘텐츠를 바라보는 시선도 변화하고 있다.

최근 영화계에서 가장 큰 이슈로 영화 ‘브이아이피’(V.I.P)가 떠오르고 있다. 장동건, 김명민, 이종석 등 호화 캐스팅에 ‘신세계’로 인정 받은 박훈정 감독이라서도 아니고 흥행에 성공해서도 아니다. 영화 속에서 표현한 여성의 모습이 논란이 되고 있다.

영화 속 사이코패스 살인마로 등장하는 김광일(이종석)이 여성을 살해하는 방식의 수위가 상당하다. 나체의 여성을 목을 졸라 죽이는데 그 묘사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여성 살해 장면을 꼭 그렇게까지 표현해야 하는지에 의문을 담는가 하면, 사이코패스 캐릭터의 성격을 설명하는데 필요한 영화적 표현이라고 피력하는 이도 있다. 여기에 불을 지핀 것은 ‘브이아이피’의 출연한 배우들을 소개하는 엔딩 크레딧에서다. 김광일에게 살해 당한 이들을 모두 ‘여자시체 역’으로 소개했다. 아무리 짧게 지나가는 엑스트라라는 여성시체 역이라는 노골적인 표현도 문제지만 굳이 여성이라고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국정원 요원 배역만 보더라도 남자는 ‘요원 역’이라고 쓰여있지만 여자는 ‘여성 요원 역’으로 소개됐다. 인간의 디폴트가 남자라는 시선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제작사는 ‘여성 시체역’에서 ‘여성’으로 크레딧을 수정했지만 ‘브이아이피’에 대한 논란은 사그러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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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아이피’만이 아니다. 올해 개봉한 ‘청년경찰’ 역시 여혐 콘텐츠 논란에 휘말렸다. ‘청년경찰’의 경우 남성 캐릭터를 성장시키고 각성시키는 존재로 여성 흉악 범죄가 사용된 점이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실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건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여성들에겐 그 자체가 공포다. 맘에 드는 여성의 전화번호를 받기 위해 몰래 뒤를 따라가고 여성을 남성의 보상체제로 사용하니 씁쓸할 수밖에 없다.

강남역 살인사건을 연상케 하는 ‘토일렛’은 더 충격적이다. 8월 개봉한 영화 ‘토일렛’은 강남역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며 여자들에게 모욕을 당한 한 남자가 일행과 함께 복수를 시도하면서 벌어지는 범죄 심리 스릴러라고 홍보를 했다. 유가족을 우롱하는 처사이자 가해자를 옹호하는 표현에 네티즌들은 분노했고 홍보사는 특정 사건을 분석해 재조명 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하며 공식 사과했다. 하지만 남성의 분노에만 초점을 맞춘 영화를 아무렇지 않게 관람하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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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만? 방송+가요계도 끊이지 않은 논란

근래에 영화계에서 논란이 연이어 터졌지만 여타 매체들도 분위기가 다르지 않다. 가요계, 특히 힙합 장르 속 여혐 가사의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Mnet ‘쇼미더머니4’ 송민호의 ‘산부인과’ 가사였다. 논란의 곡이 브라운관을 통해 전파를 탄 후 송민호는 많은 비판 속 결국 사과했고 ‘쇼미더머니4’ 제작진은 중징계를 받았다.

이후 발매 시기와 상관없이 김치녀, 된장녀 등 여성 혐오적 관점의 가사들은 높은 비판을 받았다. 창모는 2013년 발표한 ‘소녀’라는 곡에서 모교 여학생을 성적으로 묘사해 논란이 됐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사과문을 올렸다. 물론 여전히 많은 여성들의 비판에도 힙합계에서 여혐은 현재 진행중이다. 지난해 시국을 비판하는 곡 ‘나쁜X’으로 여혐 논란에 휩싸였던 산이는 올해 초 ‘I Am Me’라는 곡을 발표했는데 ‘여혐 남혐 일베 메갈 여당 야당 너 나’라는 노랫말을 담았다. 여혐의 대표적인 래퍼인 블랙넛은 수차례 키디비를 성희롱하는 가사로 결국 고소당했고 사건은 검찰에 송치된 상황이다.

코미디 프로그램 속에 등장한 여혐 요소들은 너무 익숙해진 상태다. 여성 코미디언들은 유달리 외모를 이용한 개그를 하고 특히 뚱뚱한 여성 코미디언은 희화화된다. 데이트 폭력을 의심하는 상황도 빈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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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로맨스 드라마에 등장했던 심쿵 클리쎄는 현재는 대표적인 데이트폭력 장면으로 인식되고 있다. 지난해 방영된 SBS ‘우리 갑순이’와 KBS2 ‘함부로 애틋하게’는 로맨스라는 명목 하에 데이트 폭력을 가하는 남자 캐릭터의 모습을 보여줬다. ‘우리 갑순이’의 장면은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안건으로 상정됐고 시대를 반영하지 못한 ‘함부로 애틋하게’는 시청자의 외면을 받았다.

XTM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남원상사’는 시작부터 단추를 잘못 꿰었다. 이미 남성 중심인 예능판에서 당당하게 남초 예능으로 나선 ‘남원상사’는 시작 전부터 ‘여성에게 복수하고 싶은 남자’를 찾는다는 공고문으로 논란이 됐다. 방송을 탄 이후에도 남성의 원기를 상승시켜 준다는 콘셉트를 위해 여성을 이용하는 모양새는 눈살을 찌푸리게 했고 특정 신체 부위를 부각시켜 방통위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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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방송은 더 문제가 심각하다. 최근 많은 충격을 준 왁싱샵 살인사건의 범인은 유명 BJ의 방송을 보고 이 여성이 혼자 일한다는 사실을 알고 범행의 저질렀다고 밝혔다. 해당 방송에선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여성들을 이 방송을 여혐 콘텐츠라고 지적하며 공론화 시위까지 벌렸다. 여성, 남성의 대립 방송으로 살해 협박까지 발생하기도 했다. 한 여성BJ는 게임상에서 남성들이 여성 유저들에게 성희롱을 하거나 비하하는 발언에 대한 미러링 중심의 방송을 했고 이에 발끈한 남성 BJ의 공격이 이어졌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 남성 BJ는 이 여성 BJ의 신상을 털고 살해하겠다며 생방송을 진행했고 결국 네티즌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 이런 시선들의 변화는 여혐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회에서 더욱 대두되고 있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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