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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View]① ‘박열’, 날것 그대로의 이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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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남우정 기자] 날것 그대로의 이제훈. ‘박열’은 잊고 있었던 이제훈의 섬뜩한 눈빛을 다시 확인하게 한다. 우리가 첫 눈에 반했던 ‘파수꾼’ ‘고지전’ 속 그 이제훈을 ‘박열’을 통해 다시 만났다.

‘박열’은 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 퍼진 괴소문으로 6000여 명의 무고한 조선인이 학살되는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관심을 돌릴 화젯거리가 필요했던 일본내각이 불령사를 조직해 항일운동을 하던 조선 청년 박열(이제훈)을 대역사건의 배후로 지목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 이름조차도 생소한 박열이라는 인물은 이제훈에게도 강렬하게 다가왔다.

“사실 이름도 몰랐고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일반적인 상업영화의 괴를 한다기 보단 영화에 담긴 의미가 강렬하게 와서 연기하기가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감독님이 박열이라는 인물을 공부하고 탐구하는 과정에서 있던 사실을 발췌해서 시나리오에 담아낸 게 많았다. 실존인물이기 때문에 해석을 하거나 새롭게 창조되어야 하는 부분보단 메시지를 잘 전달하는 게 이 영화의 의의라 생각해 연기적 고민이 많았다.”

‘사도’ ‘동주’ 등으로 실존 인물들의 다양한 면모를 그려냈던 이준익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기 때문에 ‘박열’에 대한 기대감은 컸다. 그 기대와 궁금증은 ‘박열’의 포스터가 공개되자마자 증폭됐다. 말끔하고 어려보이기까지 했던 이제훈은 없었다. 수염을 기르고 표정을 찡그린 이제훈은 박열에 투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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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이라는 22세 청년의 모습을 입혔다. 처음에 테스트 촬영을 할 때 분장을 하고 왔는데 스태프랑 배우들이 못 알아보더라. 감독님도 막상 제 분장 모습을 보고 ‘허걱’하셨다. 이렇게 세게 꾸며도 되나 우려도 있었는데 이제훈이란 사람이 지워지고 박열이라는 인물을 보여줄 수 있겠구나 싶은 기대감은 있었다.”

영화 속에서 이제훈은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박열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재판 장면에서 길고 긴 일본어를 읊었고 감옥에서 단식 투쟁을 벌이는 박열을 표현하기 위해 탄수화물을 끊고 6주 만에 6kg를 감량했다. 고증을 중심으로 한 이준익 감독의 시나리오에 충실하면서도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부분을 놓치지 않았다. 그 중 하나가 단식투쟁 중 고문을 받는 장면이다.

“텍스트에는 박열이 단식 투쟁을 하고 고문을 받는다고 설명만 있었다. 그걸 표현하는데 있어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절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숟가락으로 음식을 퍼 먹이는 게 아니라 손으로 집어넣으라고 했다. 그렇게 음식을 집어넣으면 뱉어낼 것 같았다. 그럼 얼굴을 가격하고 마구 밟아달라고 했다. 단식투쟁을 하는 박열을 거짓 없이 보여주고 싶었다. 신체적 가학을 겪었을 때 상태가 달갑지 않았다. 데미지가 상당했지만 그렇게 했어야 인물에 조금이나마 가까워지지 않을까 싶었다. 감독님이 제 의견을 존중해주셔서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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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메가박스 플러스엠 제공


■ “‘파수꾼’, 벌써 10년 전”

이제훈이라는 영화계에 확실하게 각인시킨 작품이라면 ‘파수꾼’이다. 벌써 ‘파수꾼’이 세상이 나온 지 10년이 됐다. 그 후 ‘건축학개론’으로 대중적 인지도를 얻었고 이제훈은 수많은 작품에서 선택을 받았다.

“인생작이 매순간 있으면 좋겠지만 강렬했던 순간은 첫 독립 장편인 ‘파수꾼’이다. 그걸로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 주목해 주셨고 그 이후 큰 상업 영화였던 ‘고지전’, 대중들과 접점은 ‘건축학개론’으로 커졌다. 매 작품이 소중하다. 작품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이야기를 통해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되게 중요하다. 재미와 감동일수도 있고 보지 못했던 새로운 장르적 쾌감이기도 하다. 아직 명확하게 정의를 내리긴 어렵다. 아직도 경험하고 배워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데 작품을 통해 느낀는 것 같다. 보여주고 싶은 게 안에서 양산되고 표출하고 싶은 욕구 있다. 기대감과 호기심으로 작품을 선택하는 것 같다.”

박열은 20대를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산 인물이다. 17살에 3.1 운동을 참여했고 일본으로 건너가 무정부운동에 투신했다. 이제훈에게 본인의 20대는 어땠는지 묻자 “내적갈등이 심했다”고 표현했다.

“중학교 때부터 영화를 많이 봤고 마음 속으로 꿈을 키우다가 20대 초반에 연기를 해보자는 결심을 하고 연기 학원에 갔다. 극단도 가고 뮤지컬도 섰지만 배우로 살 수 있는지 혼란기였다. 좋아서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인 먹고 사는 문제가 있었다. ‘밥벌이 할 수 있을까’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은데’ ‘청춘헤 대한 기회비용을 써서 낙오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많았다. 선택을 받아야 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컸고 갈팡질팡 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하다 보니까 제자리걸음인 것 같아 되돌아 갈 곳을 없애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학교에 갔다. 그땐 치열하게 살았던 것 같다. 앞만 보고 가는 것에 내적 갈등이 심했다. 학교에 갔을 때 밥벌이 보단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굶어죽진 않겠다고 생각했다. 표현하고 싶은 걸 하는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구체적 생각이 쌓였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해낸 박열처럼 이제훈 역시 ‘박열’을 통해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을 끌어올렸다. 하나의 작품을 넘어 앞으로 연기하는데 있어 ‘박열’이 준 영향이 남다르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해야 되는데 이번 작품이 제가 앞으로 작품을 선택하는데 영향이 있을 것 같다. 배우로의 길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일원으로 가치 있는 일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하는데 중요하지 않을까싶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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