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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범의 영(映)터리] 연기? 배우만 하냐? 감독도 할 수 있다
[헤럴드경제 문화팀=김재범 기자] 혹시 답답했던 이유가 있었을까. 아니면 갈증을 느꼈을까. 그것도 아니면 욕심일까. 어떤 이유라도 좋다. 관객들에게 재미와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그래서 카메라 뒤에 있던 감독들이 카메라 앞으로 나서는 횟수가 늘어가고 있는 듯하다. 굳이 그런 이유가 아니라도 좋다. 연기의 색깔과 톤을 떠나서 새로운 재미를 가져갈 수 있다면 관객들로선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더욱이 자신이 머릿속으로 그리던 스토리의 장치를 직접 온 몸으로 부딪쳐 보자니 감독들로서도 흥미로운 도전이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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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춘몽’ 대 놓고 감독 3인방 주연


다음 달 6일 개막하는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춘몽’은 벌써부터 영화 마니아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화제작이다. ‘시네아스트’ 장률 감독이 연출하는 사실상 첫 번째 상업영화란 점도 눈길을 끈다. 하지만 진짜 관심은 주인공 3인방이다. 여배우 한예리를 사이에 두고 티격태격하는 남자 3명이 모두 현직 영화감독들이다. ‘똥파리’를 연출한 양익준, ‘범죄와의 전쟁’ ‘군도’를 만든 윤종빈, ‘무산일기’의 박정범이 그 주인공.

먼저 양익준 감독은 배우란 이름이 더 익숙한 감독이다. ‘똥파리’에서 희대의 패륜아 연기를 하면서도 연출을 겸업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다. 작품성까지 인정받았다. 이후 그의 행보는 아이러니하게도 배우쪽으로 치우쳐 버렸다. 영화 ‘집 나온 남자들’에서 지진희 김인권 등과 함께 주연배우로 발돋움했다. 이후에 송중기와 문채원 주연 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에 출연하며 드라마까지 소화했다.

윤종빈 감독 역시 데뷔작이자 학교 졸업작품이던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주연급 조연 캐릭터를 연기했다. 하정우의 초기작으로도 유명한 이 영화 속 그의 모습에 한 때 실제 인물이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왔다. ‘범죄와의 전쟁’에선 스치듯 지나가는 카메라 기자로 깜짝 등장했다. 류승완 감독의 히트작 ‘베를린’에서도 국정원 요원으로 윤 감독이 출연한 사실은 알만 한 사람들만 아는 희귀한 사실.

박정범 감독 역시 ‘무산일기’를 통해 주연과 연출을 겸업하며 데뷔했다. 이후 전 세계 영화제를 휩쓸며 최고의 신세대 감독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어 자신이 연출한 ‘일주일’ ‘산다’에서도 주연과 연출을 겸업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주연 배우 출연료 절감 차원에서 자신이 주인공을 맡는다며 농담을 했다. 하지만 기성 배우 이상의 연기력에 영화팬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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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베테랑' 촬영 현장에서의 류승완 감독

■ 1300만 ‘베테랑’ 류승완 감독…“시작은 연기”

배우 류승범의 형이란 타이틀이 더 강했던 류승완 감독은 흥행과는 거리가 멀었던 연출자다. 물론 사실 자기 색깔이 확실한 연출 스타일이 돋보이긴 했다. 그러나 ‘베를린’의 성공 이후 ‘베테랑’의 특급 흥행과 함께 그는 충무로 최고 흥행 감독으로 발돋움 했다. ‘베테랑’ 흥행 당시 인터뷰에서 또 다시 연기 도전 계획을 묻자 “죽어도 그럴 일 없다”며 웃었던 류 감독이다.

그가 여러 기성 감독들의 스태프로 충무로에 첫 발을 내딛은 사실은 이미 익히 알려진 일화다. 사실 연출자로 유명세를 떨치기 전 그는 간간히 배우로 활동하며 얼굴을 알렸다.

박찬욱 감독의 초기작 ‘3인조’에서 스태프 겸 단역으로 모습을 드러낸 그는 그 유명한 복수 3부작 중 첫 번째 ‘복수는 나의 것’에서 자장면 배달부로 독특한 연기력을 뽐냈다. 물론 그의 연기는 자신의 진정한 연출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통해 완벽하게 증명해 냈다.

이후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에서 비중이 높은 조연급으로 캐스팅돼 화제를 모았다. 주인공 설경구의 형제로 출연해 사실감 넘치는 구타 장면을 선보이며 액션의 끼를 부렸다. 이후 자신이 연출한 ‘짝패’에선 무술감독 정두홍과 함께 마음껏 놀아보며 ‘충무로 액션 키드’의 면모를 선보여 왔다. 장률 감독의 ‘경주’에선 여성스런 플로리스트로 출연해 낯간지러운 연기를 능청스럽게 소화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 이준익 감독의 ‘평양성’에 카메오 출연을 하며 연기 본능을 해소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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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위) '러브스토리' 중 한 장면(아래)'아티스트 봉만대' 중 한 장면

■ “연출? 그냥 내 이야기다”…배창호-봉만대


1980년대 한국영화계를 이끌며 수 많은 걸작을 남긴 배창호 감독은 ‘연기하는 감독’의 시조 격이다. 그는 영화 ‘개그맨’에서 후배 이명세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가운데 주연으로 출연하는 파격적인 모습을 선보였다. 당시로선 상상하기 힘든 놀라운 행보였다. 1996년 자신이 연출한 ‘러브 스토리’는 아에 자신의 부인 김유미씨와 함께 더블 주연으로 연출과 주연을 겸업했다. 이 영화는 실제 자신과 아내의 만남을 극화한 얘기다.

에로티시즘을 상업적으로 끌어 올린 장본인으로 평가 받는 봉만대 감독 역시 연기파 감독으로 분류된다. 수 많은 에로 영화를 찍으며 에로의 미학을 예찬하던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아티스트 봉만대’로 결국 주연까지 거머쥐었다. 그리고 동료 감독 이무영이 연출한 ‘한강 블루스’를 통해 세밀한 감정 연기도 선보였다. 능수능란한 연기력은 아니지만 그의 존재감이 영화 전체를 틀을 뒤 흔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작품 전체의 톤을 조절하는 작용까지 하며 ‘연기파’의 힘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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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화 '타짜 신의 손' 중 이준익 감독 (아래) '부당거래' 중 황병국 감독

■ “카메오 제왕은 바로 나”…이준익-황병국


‘왕의 남자’로 유명한 이준익 감독은 시원한 민머리 헤어스타일이 먼저 떠오르는 감독이다. 배우를 능가하는 인지도와 유명세로 대중적인 인기도 만만치 않다. 그가 내놓은 작품들의 흥행력이 이끌어 낸 인기일 것이다. 하지만 간간히 등장하는 카메오 존재감도 그 인기의 분명한 한 부분을 차지한다.

‘대배우’ ‘타짜-신의 손’ ‘슈퍼스타’ ‘부당거래’ ‘뒷담화: 감독이 미쳤어요’ ‘라디오스타’ ‘황산벌’ 등 셀 수 없이 많은 작품에서 카메오로 모습을 드러냈다. 단편 ‘농반진반’에선 이 감독의 가감 없는 진짜 연기가 펼쳐지기도 한다.

이 감독을 넘어선 진짜 카메오 특급 존재감은 따로 있다. 바로 이름도 생소한 황병국 감독이다. 데뷔작 ‘나의 결혼 원정기’와 엄태웅이 주연을 맡은 ‘특수본’ 연출자다. 하지만 그는 충무로 최고 카메오 연기의 달인으로 통한다.

가장 최근작은 700만 관객을 동원한 ‘터널’에서 하정우에게 사과하는 주유소 사장으로 출연했다. 이어 ‘검사외전’ ‘베테랑’ ‘내부자들’ ‘부당거래’ 등 굵직한 작품에선 모두 그의 모습이 어떤 식으로든 등장했다. 기술적인 한 방을 요구하는 연기가 아닌 친근한 이미지에서 전달되는 생활 연기가 실제인지 연기인지를 분간키 어렵게 만들 정도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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