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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비게이션] ‘덕혜옹주’, 한 여인의 살고자 했던 바람

  •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한 서린 일생 그려
  • 기사입력 2016-07-29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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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문화팀=김재범 기자]망국(亡國)의 한(恨)은 단순한 감정 실타래 안에선 설명이 불가능한 이상의 무엇을 담고 있다. 왕조의 무너짐은 곧 국가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것이다. 정체성의 상실은 결국 바닥이 없는 슬픔의 우물과도 같다. 존재하는 자신이 ‘그곳에 없다’는 자의적 상실감에 빠져버리면 결국에는 현실의 세계를 넘어선 이상으로 접어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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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인이 그랬다. 켜켜이 쌓인 분노는 몰락한 왕조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그 자존심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풀어낼 수 없는 응어리가 돼 버렸다. ‘한’으로 남은 가슴 속 한 곳의 아픔은 그리움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리워한 마음은 결국 현실 속 자아를 기억 속으로 끌고 가 버렸다. 그렇게 평생을 기억에 자리한 추억을 그리워하며 살았다. 단지 원했던 것은 예전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것뿐이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손예진)는 그렇게 가늠할 수 없는 아픔의 세월을 온 몸으로 받아내며 실태래 같은 삶을 잡고 있었다. 기다리는 그리움이 언젠가는 눈앞에 나타나기를.

‘멜로의 대가’로 불리는 허진호 감독은 실제 했던 역사 속 ‘덕혜옹주’의 삶을 감정의 날줄과 감정을 넘어선 ‘한’의 씨줄로 엮어냈다. 그렇게 직조된 스토리는 비단의 화려함을 배제한 채 다소 거친 느낌의 직물로 완성됐다. 깨끗하지는 않았다. 설명이 불가능한 한 여인의 기구함은 결코 결이 고운 직조(織造)의 과정을 드러낼 수 없었다. 물론 거칠지만은 않았다. 그저 아버지와 어머니의 품을 그리워했던 여인의 기억은 누구나 간직한 삶의 가장 따뜻한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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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초반 그 아름다움에 집중한다. 어린 시절 누구보다 행복한 삶은 살아온 ‘덕혜’다. 이미 ‘경술국치’가 이뤄진 이후다. 노쇠한 고종(백윤식)은 망국의 아픔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늦은 나이에 얻은 고명딸 ‘덕혜’를 걱정한다. 국권을 상실한 치욕의 역사는 딸의 몫이 아니었다. 고종은 황제이기 전에 아버지였다. 이미 망국을 돌릴 길이 없는 점을 알고 있었다. 딸 덕혜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존재 ‘아버지’로서의 모습은 잃고 싶지 않았다. 황실 근위대장 김황진(안내상)의 조카 김장한을 부마로 선택해 혼인을 준비한다. 하지만 내선일체 작업에 돌입한 일본과 친일파는 조선 황실의 멸조(滅朝, 왕조의 사라짐)를 원했다. 조선의 국권 회복을 우려하고 그 씨앗이 될 ‘덕혜옹주’을 일본으로 보낼 악행을 준비한다. 그 중심에 친일파 한택수(윤제문)가 있었다.

역사적 흐름대로 ‘덕혜옹주’는 일본으로 강제 유학을 떠난다. 어머니 양귀인(박주미)는 독살당한 고종의 전철을 우려해 보온병 하나를 건낸다. ‘물 하나도 가려 드셔라’는 당부를 하며. 그 보온병은 훗날 ‘덕혜옹주’에겐 기억의 끝자락을 간신히 잡고 버티게 되는 상징이 된다.

오빠인 영친왕 부부와 함께 일본에서 생활하는 그는 끊임없이 조선으로 돌아가려 노력한다. 사실 ‘덕혜옹주’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몰락한 왕가의 여자로 태어나 힘의 논리가 지배하던 시절을 살아온 그녀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돌아가야 했다. 그래야만 했다. 그래서 영화적 장치인 김장한(박해일)이 등장한다. 독립군이지만 일본군 사관학교를 졸업한 군인으로 등장한다. 그는 지근거리에서 덕혜옹주를 보호하기 위해 그런 선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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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은 첩보 혹은 액션 장르의 기존 시퀀스처럼 익숙하다. ‘돌아가야 한다’는 당위성을 관객들에게 설득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했기에 영화가 선택한 지점이다. 불필요한 지점으로 인식될 수 있지만 전체의 톤과 색깔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충분히 납득되는 지점으로 해석이 됐다.

사실 ‘덕혜옹주’의 공감대는 이 과정이 실패한 뒤 이어지는 소 다케유키(김재욱)와의 결혼 생활부터다. 덕혜는 추억의 바다 속에 스스로를 빠트렸다. 끝을 알 수 없는 깊이의 물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그는 한 없이 무너졌다. 망국의 왕조 속 여인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그는 스스로를 가둬 나가기 시작했다. 기억 속에 갇힌 ‘덕혜옹주’는 그렇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무너지고 미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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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는 신파의 요소가 다분한 소재다. 또한 우리가 몰랐던 조선의 마지막 황녀의 우상화 포장 가능성도 너무도 크다. 영화는 이런 지점을 인식하고 영리하게 피해 나갔다.

그저 감정에만 호소하지도 않는다. 조선의 독립을 바라는 거창한 대의도 사실 그녀에겐 없었다. 그저 어머니가 그립고 보고 싶으며 조선의 음식이 먹고 싶고 경복궁의 가을을 그리워한 평범한 일상을 바랐던 한 여인의 얘기다. 그것을 할 수 없었던 그래서 응어리가 지고 한으로 남은 분노가 쌓이고 쌓이면서 보기 드문 무게를 전달하게 만든다.

영화 마지막 백발의 ‘덕혜옹주’와 그의 보모였던 또 다른 백발의 복순(라미란)이 만나는 장면은 영화 ‘덕혜옹주’가 말하고자 한 가장 소중한 것의 의미가 아닐까. 마지막 ‘덕혜옹주’의 손에는 보자기에 곱게 쌓인 보온병이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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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는 그저 사는 데로 살아가고 싶었던 한 여인의 소박한 바람을 말하고 있었다. 개봉은 8월 3일.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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