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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뷰포인트] '부산행' 변칙 논란, 그게 진짜 문제로 보이십니까

  • 관객 선택 무시한 규칙 강요 '문제'
  • 기사입력 2016-07-26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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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문화팀] 저는 자본주의 체재 속 개개인의 선택을 믿습니다. 영화 관람은 독과점한 대기업 강요에 의해서가 아닌 개인의 선택이란 그 단순한 명제를 믿습니다. 영화 ‘부산행’ 논란에 관한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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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이 새로운 시도를 했습니다. 전 새로운 시도라고 보고 싶습니다. 사실 이건 일반적인 개념으로 풀어내 봤을 때 ‘반칙’이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의 시각은 좀 다릅니다.

지난 20일 ‘정식’(?) 개봉한 ‘부산행’은 한국영화의 흥행 역사를 다시 쓸 정도의 질주를 하고 있습니다. 우선 눈에 띄는 점은 ‘정식’이란 말입니다. 20일 개봉 전 앞서 대규모 유료 시사회를 통해 50만이 넘는 관객을 ‘저축’하고 출발했습니다. 숫자 강박증에 쌓인 대한민국 영화계 흥행 시장이 만들어 낸 일종의 기형적 출발임에는 맞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우선 ‘부산행’을 비난하는 쪽의 시선을 정리해 볼까요. 개봉일은 약속입니다. 공정한 경쟁 속에서 부정 출발을 의미하는 반칙이 아닌 ‘함께’를 의미하는 약속이자 규칙인 셈입니다. 하지만 이 지점을 어기고 반칙을 하는 영화들이 나왔습니다. 기록적인 흥행을 터트리고 있는 ‘부산행’이 이 같은 논란의 중심에 서 버렸습니다.

숫자로만 그 영화의 모든 것이 평가되는 시장 상황이 이런 괴상한 풍토를 만들어 버렸습니다.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작은 영화들은 기절초풍할 일입니다. 라이트급 선수가 체급별 경기에 나섭니다. 경기장에 들어섰는데 느닷없이 상대편 선수가 바뀌어 버린 겁니다. 슈퍼 헤비급 선수가 ‘씩씩’거리며 자신을 노려보고 있습니다. 결과는 뻔합니다. 죽기 직전까지 흠씬 두들겨 맞고 들것에 실려 경기장을 내려오겠지요. 이런 황당한 경기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반응은 어떨까요.

여기서 주장하는 바가 갈리게 됩니다. 공정한 게임 안에서 벌어지는 피 터지는 경쟁이 흥미를 유발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반면 공정함은 빠지고 ‘피 터지는’ 그 모습에 희열을 느끼는 일부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 됐든 피가 터지고 반신불수가 되는 것은 라이트급 선수일 뿐입니다. 그럼 이 선수를 구할 방법은 없을까요.

관객들이 퇴장하면 됩니다. 심판을 하면 됩니다. 스포츠 경기 심판은 사실 경기에 참여하는 심판 자체가 아닙니다. 그것을 관전하고 그것의 재미에 빠지고 그것을 느끼는 관객의 몫입니다. 그 자체 공정함과 부정함은 오롯이 관객들이 판단할 문제입니다. 논란의 지점은 규칙이 따질 문제이지만 그 규칙은 단지 관객들을 설득할 수단이 아닐까요. 궤변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반대의 입장에서 ‘변칙 개봉’을 문제 삼는 것 자체가 궤변일 수도 있으니까요.

당신의 눈에 ‘변칙 개봉 논란’이 진정 영화계의 풍토를 흐리는 부당한 게임으로 보이십니까. 아니면 논란 자체가 관객의 심판을 무시한 진짜 반칙으로 보이십니까.

600만을 바라보는 ‘부산행’의 관객이 규칙과 정정당당함을 무시한 심판일까요. 아니면 단지 ‘피만 터지는’ 싸움에 희열을 느끼는 육식주의자로 보이시나요.

선택이란 규칙을 망각한 진짜 정정당당함을 잊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것은 관객이란 심판만이 가질 수 있는 진짜 ‘규칙’입니다. 그것은 작은 영화이든지 큰 영화이든지 누구나 인정한 진짜 규칙이니까요.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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