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시정에…골병드는 세운지구

2019-03-11 11:46

3구역, 보존 이유로 재개발 중단
4구역은 일사천리 진행 ‘이중잣대’
토지주·사업자들 수천억대 손실
“박원순 시장 실패한 정책” 지적


서울시는 현재 진행 중인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정비 사업을 이 일대 도심 전통산업과 노포 보존 측면에서 재검토하고, 올해 말까지 관련 종합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사진은 세운3구역 공사 현장.
곳곳에 펼쳐진 재개발 지연 반대 현수막.

“아니 을지면옥이 문화재인가요? 냉면집을 생활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는 이유만으로 철거를 할 수 없다니…이건 서울시의 괴변 아닌가요?” (세운3구역 토지주 이모씨)

“박원순 서울시장 취임 후 지난 2011년 개발계획 전면 백지화로 인해 지주 2명이 자살했는데… 올해 박 시장의 두번째 보류 발언에 또 극단적 선택을 하겠다고 나서는 영세토지주들도 있습니다” (토지주 김모씨)

서울시가 노포(老鋪) 보존을 위해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재개발 사업을 일시 중단하면서 토지주, 시행사, 소상공인 등이 서울시의 오락가락한 이중잣대의 재개발 정책에 혼란스럽다는 입장이다. 지난 8일 을지로3가역 인근 세운상가 재개발 구역 현장을 찾아가보니 청계천 거리와 공사장 인근에는 개발을 추진하는 토지주들의 사업 재개를 요구한 현수막들로 가득했다.

토지주와 소상공인들은 멈춰버린 개발에 답답할 뿐이다. 을지로 일대의 재개발 정책은 모두를 불편하게 만든 실패한 정책이라는 지적이 곳곳서 나온다. 현장에서 만난 한 토지주는 노후된 건물들을 가리키며 “현대식 건물도 50년 이상되면 구조나 설비가 기능을 상실해 재건축을 해야하는데 여기 세운3구역은 보다시피 일찍이 수명을 다한 건물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골목안쪽으로 들어가보니 일부 건물들은 이미 상인들이 떠나 폐건물이 됐고 미간을 찌푸리게 할 뿐만 아니라 안전사고 위험에도 노출되어 있다.

게다가 좁고 복잡한 골목길에다가 소방시설도 없는 노후한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화재가 발생하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세운3-2구역은 지난 2017년 화재가 발생했으나 소방차가 진입하지 못해 주민들이 직접 불을 꺼야 했던 위험천만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또 대부분의 건물들이 석면슬레이트 등 발암물질로 지어져 있고 주변 지역에는 벤젠, 연마재 등 화학약품으로 악취가 가득했다. 도심부적합 업종인 정밀가공공장들은 폐수처리시설도 없이 공장을 가동하고 있어 도심 토양오염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토지주는 “(이런 이유로) 하루 빨리라도 재개발이 급한데 시장님이 노포 보존을 위해 사업을 보류했다”며 “이미 다 허가가 상황에서 (시장님께서) 무슨 권한으로 재검토를 한건지 도통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도심재개발은 다양한 이해관계가 상충돼 해결이 쉽지 않은 사업이지만 다수의 이익과 권리를 보호하고자 하는 공익적 성격이 인정되어 추진되는 사업이다. 하지만 일각선 특정 개인의 일방적 이익과 시민단체의 정치적인 반개발정서에 기대어 서울시가 지난 그동안 추진되어 온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라는 지적이다.

세운3구역의 토지주는 “SH공사가 시행하는 세운4구역은 사업중단없이 진행하고 있는데 민간이 시행하는 세운3구역만 개발을 중단하는 것은 형편성의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토지주는 “세운4구역의 시계포골목은 해방이후 처음 생긴 시계유통거리였다”며 “게다가 함흥냉면 및 곰보냉면집은 60년이 넘었는데 보존하지 않으면서도 세운3구역의 을지면옥은 40년도 되지 않았는데 노포이므로 보존하겠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했다.

세운 재정비지구 사업의 사업시행인가를 내준 뒤 철거 직전에 일부 노포의 보존을 명목으로 전면 재검토에 들어간 것은 모두 다 박 시장의 말 한마디로 변경된 사안이다. 사업승인을 해준 뒤 일부가 반대한다고 해서 사업을 접고 원점으로 돌리는 정책은 우려스럽다.

특히 손실액이 만만치 않다. 토지주들은 지난 2011년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 재정비 사업자가 수천억원 손실을 봤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토지주는 “지금까지 세운3구역 사업자의 피해액 1400억원이고, 세운5구역은 1700억원이며 해당 사업자가 파산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사업이 지연 될수록 손실액은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운상가 재개발 사업은 40년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상권몰락, 슬럼화 등으로 1979년 세운상가지구 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됐으나 당시 박정희 대통령 서거 등 대형사건에 밀려 이렇다할 진전없이 지나갔다. 이후 오세훈 서울시장 시절인 2009년 세운지역 상가 재개발 이야기가 다시 나오면서 세운상가 일대를 철거하고 주변 8개 구역에 대한 재정비촉진계획을 수립했다. 하지만 2011년 박원순 서울시장이 당선되면서 세운재정비촉진계획 전면 백지화를 한 바 있다. 그 후 3년뒤 다시 재정비촉진계획을 수정해 다시 시작했으나 올해 1월 박 시장은 소상공인의 생존권과 노포 보존을 위해 세운지역 재개발 사업을 올해 말까지 연기됐다.

토지주들은 노후화와 안전사고 위험도가 큰 만큼 서울시가 특정 극소수 개인의 이익을 위해 다수의 이익을 침해하는데 앞장서는 것이 아니라 을지로 일대 공구상가가 가지고 있는 산업생태계를 존속시키기 위한 정책적 방법을 하루빨리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최원혁 기자/choigo@
print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