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이슈-이명숙]아동학대 근절을 위해 정말 필요한 것은?

2014-10-02 07:30

-이명숙 법무법인 나우리 대표 변호사

두달 전 필자는 아동 성폭력 사건 재판에 들어갔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검사가 있는데 피해아동의 변호사가 왜 필요하냐’며 재판부로부터 퇴정명령을 당한 것이다. ‘성폭력특별법에서 변호인의 재판 참여를 규정하고 있다’며 퇴정하지 않고 있었더니, 판사는 ‘변호인이 나가지 않으니 오늘 재판은 하지 않겠다’며 재판을 끝내 버렸다. 돌아올 때 느꼈던 참담한 기분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늦게나마 지난 9월29일부터 아동학대처벌특례법이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울산, 칠곡, 서울에서 8살짜리 아동들이 비슷한 시기에 잔혹하게 죽어간 이후 작년말 여론에 등 떠밀려 급하게 만들어진 이 법이 얼마나 잘 시행될지 걱정부터 앞서는 게 사실이다.

실제 칠곡 아동학대사건으로 온 국민의 공분을 샀던 지난 4월 이후 아동학대 신고는 65%나 늘었다고 한다. 특례법은 만들었지만, 올해 말까지 이를 집행할 예산은 단 한푼도 없다. 내년 예산도 턱없이 부족하다. 피해아동을 지원하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예산과 직원 수는 너무 적다. 근무환경이 열악한 상황에서 예산은 달라지지 않고 사건만 늘어난 것이다.

수사기관이나 법원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학대아동의 부모에게 ’친권상실’을 청구하도록 법에서 규정했지만, 칠곡사건처럼 수사기관이 청구하지 않으면 그만이지 않을까? 특례법에 규정된 피해아동을 위한 ‘국선변호사제도’는 또 어떤가. 국선변호사제도는 성폭력특별법에도 규정돼 작년부터 시행되고 있지만, 아직도 정착되지 못하고 겉돌고 있다.

특례법 제정이 능사는 아니다. 관심만 있다면 있는 법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한 내용들이다. 아동학대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생각이 변화되고 신고가 전제돼야 한다. 예산 증액과 수사기관과 법원의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 법 집행에 대한 의지가 바뀌어야 한다. 덜컥 법을 만들어 내민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더이상 학대받고 죽어가는 아동들이 없는 사회를 만들려면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고민해 볼 일이다.


▶이명숙 변호사는

1986년 이화여대 법학과 졸업

1987년 제29회 사법시험 합격

1990년 사법연수원 수료(19기)

1990년 변호사 개업

2001년 여성부 고문변호사

2001년 경찰청 여성아동범죄대책 자문위원

2003년 서울시 성매매관련 다시함께센터 법률지원단장

2010년 법무법인 나우리 대표변호사

2011년 도가니사건 무료법률지원단장

2013년 국무조정실 아동정책자문위원

2013년 경찰청 4대 사회악 근절 정책자문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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