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피의 일요일’…동남부 독립국 ‘노보로시야’ 탄생하나

2014-05-09 11:21

[헤럴드경제=한지숙 기자]우크라이나 동부 친(親) 러시아 분리주의 세력들이 오는 11일(현지시간) 독립 찬반 주민투표를 강행키로 하면서 대규모 유혈충돌에 따른 ‘피의 일요일’이 재현될 조짐이다.

우크라이나 동부 친러 분리주의자들은 이번 주말 투표를 통해 우크라이나와 독립된 ‘노보로시야(Newrussia)’ 건국을 밀어부치려 하고 있다. 이에 맞서 우크라이나 과도정부는 주민투표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원천 봉쇄한다는 강경방침을 굽히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동서로 분열돼 내전상태에 돌입할 지 이번 주말이 중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친러 분리주의 남동부 연합국 건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데니스 푸실린도네츠크인민공화국 공동의장은 8일 인민위원회가 도네츠크 주청사에서 푸틴 제안을 두고 자체 투표를 벌여 ‘78 대 0’의 만장일치로 주민투표를 실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9일 오전 현재 주민투표를 실시하기로 한 곳은 루간스크주 포함 2개주다.


‘당신은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의 독립 선포를 지지하십니까?’라고 적힌 투표용지 300만장 이상이 도네츠크주 전역에 걸쳐 지역 선거위원회로 보내진 것으로 알려졌다.

투표 결과는 뻔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이미 다 짜맞춰져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8일 우크라이나 정보 당국이 분리주의 지도자와 러시아 공작원과 투표율을 사전 모의하는 전화통화 내용이 담긴 녹음 파일을 지난 7일 웹사이트에 올렸다고 소개했다. 이 대화에서 분리주의 지도자가 주민투표 연기를 제안하자, 친러 정치 공작원으로 의심되는 인사는 강행을 주장하며 “투표용지를 집계할 것이냐, 미쳤냐? 89%가 찬성했다고 하자”고 말했다는 것이다.


분리주의 세력은 주민투표를 통해 하리코프주, 오데사주, 니콜라예프스크주 등을 묶은 동남부 연합 독립국 ‘노보로시야(Newrussia)’를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 국령의 자치국이 되거나, 우크라이나를 동ㆍ서 연방제 국가로 만드는 게 이들의 목표다.

▶과도정부 “불법, 진압” =우크라이나 중앙정부는 주민투표를 불법이라고 맹비난하고 ‘반테러 작전’으로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크림에서처럼 앉아서 당하진 않겠다는 의지다. 정부군이 이미 도네츠크 주 슬라뱐스크를 전면 봉쇄했고, 화력을 배치해 친러 민병대와의 일전을 벼르고 있다. 정부군은 극우민족주의 용병 등이 가세해 투표 저지를 위해 대대적 공세를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중앙정부의 동부 주민 장악력이 약한데다 도네츠크 주청사에 한달넘게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주정부 세력도 투표를 막기에 역부족이다. 이들은 투표에서 찬성 결과가 나오더라도 인정하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알렉산드르 크라프초프 도네츠크 주위원회 부의장은 분리주의자들의 주민투표는 “헌법에 위배되는 그들만의 일”이라며 강력 비난했다.


▶선 그은 푸틴, 다음 수는? =푸틴의 유화적 발언을 두고 외신은 여전히 분분한 해석을 내놓는 가운데, 푸틴은 이런 사태를 충분히 예상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BBC는 “갈등이 계속될 줄 알고, 중앙정부 힘을 약화시키고자 위장술을 썼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푸틴은 ‘5월25일 대선지지’와 ‘주민투표연기 요청’을 공식화 한 만큼 우크라이나 동부 사태의 책임과 비난에서 한결 자유로워졌다. 푸틴으로선 ‘동남부 연합 독립국’을 러시아와 합병하는 부담을 지기 보다, 연방제 국가로 둬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EU)이나 나토에 가입하지 못하도록 묶어둘 공산이 크다. 이참에 동부만이라도 러시아 관세동맹에 포함시켜 경제, 군사적 영향력 확대를 노릴 것으로 예상된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서방측이 무력 진압에 나설 경우 러시아 보호주의를 앞세워 군사 개입을 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소한 푸틴은 동부 사태에서 발을 뺀 자세를 취함으로써, 서방의 크림 합병 묵인이란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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