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개의 엉덩이] "라텍스를 입은 그녀, 끈적끈적해"

2012-02-24 09:38

‘라텍스는 패션일까, 페티시일까, 착란일까?’(Le latex: mode, fétiche ou perversion?)


지난해 연말 분위기가 한창인 12월 11일 목요일 파리에서는 풍선 인형으로 탈바꿈한 채 대형 구두를 신고 트럭의 에어 챔버를 이용해 만든 의상을 걸친 여성과 거대한 라텍스 풍선 속에 몸을 숨긴 모델의 모습을 구경할 수 있었다.


‘데모니아의 밤(Nuit Demonia)’ 행사를 위해 전 세계로부터 1600명의 페티시스트가 파리의 라로코(La Loco)에 집결한 것이다. 그들은 영화 ‘매트릭스’나 ‘블레이드 러너’에서 영감을 얻은 듯한 옷을 입고 나타났다. 2시간여에 걸친 이상한 패션쇼 가운데 하이라이트는 실뱅 쾨르 졸리 패션쇼다. 프랑스 출신의 이 스타일리스트는 트럭 타이어라는 재료를 이용해 극도로 농염하면서 찢어지지 않는 창작품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85% 라텍스로 구성된 에어 챔버가 주 소재다. “관능적인 느낌을 주는 재료로 잘 알려져 있지요. 피부에 잘 달라붙는데다 형태를 부각시키는 데 최적이거든요.” 그는 또한 트랙터 타이어를 이용해 완충장치처럼 가슴을 보호하는 옷을 제작하고 있다.
 
“가장 이상적인 재료는 작은 압력에도 부풀어 오르는 공사장 차량 에어 챔버입니다. 두께가 2㎜라 아주 섬세한데다 자동차의 에어 챔버보다 더 가볍거든요.”


장갑을 만들기 위해 실뱅 쾨르 졸리는 자전거의 에어 챔버를 사용하기도 한다. 몸에 잘 달라붙기 때문이다. 수작업을 통해 만든 그의 의상을 입으면 마치 고무로 만든 인형처럼 보인다. 엉덩이에 달라붙은 둥근 모양의 짧은 치마, 검은 끈을 풀어헤친 크래시 스타일의 파티 복장, 에어백 형태의 코르셋에 당신은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


‘데마스크(Demask)’라는 라텍스 상표는 경주용 자동차의 차체처럼 결합된 여성의 모습을 통해 일탈의 미학을 극도로 강조한다. 암스테르담에 정착한 영국인 스티브 잉글리시가 20년 전 만들어낸 이 상표는 파격적인 외양 덕분에 가장 많이 알려진 페티시 의상이 됐다. 잠수부 복장을 입듯 사람들은 이 의상을 몸에 끼운다. 두 개 층으로 구성된 의상 중 일부는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압력을 받으면 공기가 두 개의 라텍스 막 사이로 들어가게 되며, 몸은 밀폐된 기구 혹은 검고도 빛나는 덩어리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 반면 내부의 몸은 압축돼 외부 세계와 모든 접촉이 단절된다. 모태 속의 태아처럼 기묘한 감정에 몸을 내맡긴 채 사람들은 고립된 감각의 거품 속에 캡슐처럼 담긴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라텍스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번쩍거리는 외양이다. 제2의 피부로 간주되는 라텍스는 태반 혹은 육체 내부에서 찾아낼 수 있는 끈적끈적한 막을 연상시킨다. 욕망과 동의어로 느껴진다는 얘기다.



 
라텍스에 대한 페티시즘이 최초로 생겨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에서다. 라텍스 패션 전문 잡지인 ‘마르키스(Marquis)’를 창간한 페터 체르니히는 쿠즈만 사가 1951년부터 합성 라텍스 의상을 판매하기 시작했다고 기억해낸다. “당시 세상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 영국에서도 파라고무나무 수액으로부터 추출한 제품이 등장하자 고무 제품에 열광하는 사람 수가 수천명으로 늘어났다. 자부심으로 무장한 그들은 스스로를 ‘고무 성도착자’로 명명했다. 그들은 라텍스가 몸매를 고귀하게 만들면서 육체를 새로 주조하며, 진흙 속에서 목욕하는 것처럼 달콤한 기분을 만들어낸다고 주장했다. 땀은 흡관(吸管) 소리를 내며 피부를 애무하는 라텍스 의상 내부에서 점착성으로 변한다.


영국과 독일에서 출발한 라텍스 패션은 그 후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스칸디나비아 스위스 등 북유럽 지역을 강타했다. “날씨가 더운 라틴 국가에서는 라텍스가 덜 성공을 거두었다. 그것을 걸치고서 사람들은 연방 땀을 흘려댔다.
 
그러나 일본과 미국에서 라텍스는 댄스파티나 특이한 복장만 참가할 수 있는 축제를 통해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고 페터 체르니히는 말한다. 이런 종류의 가장 유명한 파티는 런던에서 개최되는 ‘러버볼(Rubber Ball)’이다. ‘라텍스 무도회’와 ‘고무로 만든 고환’을 동시에 의미하는 합성어다.
 
30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그곳에서 미끄러운 개구리 인간 복장을 즐기며 만남의 장을 갖는다. 암스테르담에 소재한 웨이스트랜드(Wasteland)에서도 번쩍이고 끈적거리는 피부를 사랑하는 2000명의 사람들이 규칙적으로 모인다. 프랑스에는 ‘데모니아의 밤’이 있다.


“알다시피 페티시즘은 원래 신성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페티시 오브제는 부적이나 행운을 의미했다. 긍정적이었다는 의미다. 그런 다음 성스러운 것에서 성적인 것으로, 성적인 것에서 금기로 넘어가면서 부정적인 의미를 띠게 되었다”고 파코 라반은 이야기한다. 반면 페터 체르니히는 그와 다르게 생각한다.
 
“극한 스포츠, 현란한 비디오게임, 강렬한 감정을 추구하는 것이 오늘날 대세입니다. 페티시즘은 이러한 정신적 이질감, 혼란, 야만적 도피의 일부분을 이루고 있습니다.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 바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데모니아의 밤’은 2008년 12월 11일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열렸다. 레스토랑, 5개의 바, 2시간에 걸친 패션쇼, 록?테크노?EBM?일렉트릭?뉴웨이브 등을 즐길 수 있는 댄스파티, 예술가와의 만남, ‘페티시 빌리지’, 사도마조히즘 타워, 지배적 역할을 하는 여성의 쇼, 이탈리아인 러버스타(Rubber star), 미국인 러버돌(Rubber Doll)처럼 페티시 스타가 보여주는 퍼포먼스 등이 주요 프로그램이다.
 
‘라로코’는 파리 18구 불르바르 드 클리시 90번지에 있다. 파티에 참석하려면 최소한 가죽, 비닐 혹은 라텍스 재질의 치마나 바지를 걸쳐야 한다. 라로코 내부의 가게에서는 20에서 30유로라는 저렴한 가격에 의상을 구입할 수 있다.


글=아녜스 지아르(佛칼럼니스트), 번역=이상빈(문학박사ㆍ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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