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하를 보는 천개의 눈

2010-03-31 22:54

솔직히 ‘장기하와 얼굴들’이 이렇게까지 뜰 줄 몰랐다. 매니저가 생기고 바빠서 인터뷰하기 어렵다는 얘기를 전해들었을 때도 ‘에이~ 설마?’ 하는 생각마저 들었으니까. 하지만 불과 몇 달 새 장기하는 수많은 ‘족적’을 남겼다.

인디음악계에선 1000장만 팔려도 ‘대박’으로 여긴다. 그런데 이들이 2월 말 내놓은 첫 정규 앨범 ‘별일 없이 산다’는 벌써 3만장이 넘게 팔렸다. 최근엔 ‘한국대중음악상’에서 3관왕을 차지했다. 서태지 콘서트의 오프닝을 장식하고, 이적이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에 고정 게스트로 출연한다. 이젠 오버와 인디를 가리지 않는 유명인이다.



▶오~래가네. 왜?
장기하의 열풍은 생각보다 지속적이다. ‘잠깐 불다 사그라질 바람’이라는 관측도 많았지만 장기하는 지금 순항 중이다.
그의 지속적인 인기몰이는 장기하가 보인 색다른 음악 세계와 ‘장기하’라는 인물이 가지는 상품성이 절묘하게 결합한 결과다. 그의 독특한 음악과 재기 발랄한 입담, 준수한 외모와 학벌은 주목을 받기에 충분한 요건을 갖췄다.

여기에 그의 태도도 한몫했다. 그는 언론에 의해 휘둘리지 않고 노련하게 군다. 자신에 대한 과도한 해석과 오해들에 대해 적극 부인하지도, 해명하지도 않는다. 줄곧 태연하고 급기야 심드렁해 보이기까지 한다. 평정심을 잃지 않고 상대가 시비를 걸어도 “그래서 뭐?”라고 할 것 같은 온건한 삐딱함 혹은 쿨함은 그의 장점이다.

장기하 열풍의 상당 부분은 기성세대에 힙입는다. 서울대 사회학과 출신에 과도한 반항심을 드러내지 않는 온건한 태도, 삐딱함 대신 유머러스함이 어우러진 화법은 기성세대의 호감을 얻기 좋은 요건이다. 젊은 세대의 지지를 받으면서도 동시에 기성세대에 반기를 드는 반골이 아니라는 점, 착한 아들이나 삼촌 같은 호감형 인물로 ‘어떤 이들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는 점’은 장기하만의 특장점이다.


▶아무리 포장해도 그는 자유롭다
마치 언론에서는 장기하가 ‘88만원 세대’의 고민을 적극 대변하는 듯 포장한다. 하지만 장기하는 그런 틀에서 좀 더 자유롭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페르소나를 ‘싸구려커피’의 가사에 투영했다고 밝힌 바 있다. 창작의 세계에서 “눅눅한 비닐장판에 발바닥이 쩍하고 달라붙었다가 떨어진다”는 가사가 만들어졌다는 얘기. 요즘 젊은 세대의 정서가 자연스레 묻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꼭 ‘88만원 세대’의 비애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려 했다는 해석은 낯 간지럽다.

‘눈뜨고 코베인’의 보컬 깜악귀는 “젊은 세대들이 가진 무기력의 정서가 반영된 것은 사실이지만, 저층민의 정서가 아닌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청년의 무기력에 가깝다”고 말했다.
그의 인기를 태도의 문제만으로 봐선 곤란하다. 단순히 재미 위주의 거품에 머물지 않고 음악 자체만으로도 주목받을 만하다. ‘장기하와 얼굴들’만이 가진 음악적 특성은 그가 ‘지속 가능한 딴따라 질’을 가능케 하는 원천이 된다.

수많은 평자가 말했듯 그의 음악은 ‘산울림’ ‘송골매’ 등 1970~80년대 그룹사운드의 감성을 재해석했고, 한국의 복고음악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대중에게 드러냈다. 그의 음악(별일 없이 산다)은 장기하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음악의 스타일을 명확히 알 수 있다.

그동안 홍대 인디신을 주름잡았던 영미록은 대중과 소통하기 어려운 지점이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친숙한 복고음악들은 특유의 친숙함과 인디신의 재기 발랄한 재해석이 가미되면서 대중에게 다가갔다.
음악평론가 서정민갑은 이들의 정규 1집 리뷰에서 노랫말에 집중했다. 그는 “이들의 노랫말은 그리 특별하지 않은 연애담과 일상의 소소한 정서들이다. 누구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노랫말 속 이야기를 능청과 해학으로 엮어감으로써 부담 없고 재미있는 음악으로 안착했다”고 썼다.


▶장기하 음악의 포인트는 그래도 유머
장기하의 대중성을 완성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유머다. “이건 니가 절대로 믿고 싶지가 않을 거다/그것만은 사실이 아니길 엄청 바랄 거다/나는 별일 없이 산다/나는 사는 게 재밌다/매일매일 신난다”(‘별일없이 산다’ 중)는 가사는 피식 실소가 나올 만큼 유쾌하고 재밌다.

한때 ‘장교주’로 불리던 장기하가 패러디 UCC 덕에 스타덤에 올랐다는 설명도 미흡한 점이 있다. 사실상 인디신에는 장기하보다 더 재기 발랄한 퍼포먼스를 보이는 밴드들이 많다. 단 장기하의 퍼포먼스는 귀엽고 친근하다. 복고음악이 주는 무난함과 장기하식 해석의 특이함, ‘인디스러운’ 표현법과 ‘가요스러운’ 대중성 간 절묘한 조화가 장기하의 인기몰이의 힘이다.

대중음악평론가 차우진은 “마치 80년대 태어난 고학력 문화수용자들의 지적 노스탤지어”라며 좀 더 냉정하게 평가한다. 이번 앨범에 속한 ‘삼거리에서 만난 사람’과 ‘별일없이 산다’는 산울림과 송골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나머지 곡들은 습작 같다고 평한다. 대중음악평론가 조원희도 “이미 장기하를 숭배하는 대중의 기대와 ‘싸구려커피’ 이전의 장기하라는 더욱 거대한 벽을 동시에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정규 1집은 대중을 기준으로 그 기대에 딱 맞는 수준에 머물렀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장기하의 대중적인 인기가 홍대 인디신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도 관심이다. 대부분의 홍대 인디신 관계자들은 장기하의 성공이 인디신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한 인디밴드 멤버는 “오히려 인디신에 좋은 영향을 주진 않을 것”이라고 평했다.

장기하가 성공한 경로를 살펴봤을 때 오히려 홍대 음악인들은 의욕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언론이 인디신 중 특이한 아이템인 장기하를 쏙 건져낸 모양”이라며 “인디신의 시스템이나 전체 구조적 문제에 대해 주목하는 언론은 없다”고 말해 부나방처럼 이슈를 좇는 언론에 대해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조민선 기자/bonjo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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